▲ 이종현 변호사 |
그런데 형사소송절차에서 과연 실체적 진실은 발견될 수 있는 것인지 여부를 곰곰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하나의 현상을 두고도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 그 현상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법대 재학시절 형사소송법 교수님 한 분이 수업시간에 실체적 진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소송과정에서 형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실체적 진실은 하나이고, 형사소송은 원칙적으로 검찰이 공소사실을 주장하고 그에 부합되는 증거를 제출하면, 피고인은 그에 반대되는 변명내용을 주장·입증하고, 법관은 제3자적 입장에 서서 그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은 오로지 신만이 아는 것이고, 한 인간에 불과한 법관은 그 능력과 자질이 아무리 출중하고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신과 같이 전지전능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끊임없이 가 닿으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이상향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오만한 생각이 아닐까? 그래서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가름하는 법관은 항상 재판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판단이 실체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언제나 인식하고 실체적 진실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실체적 진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소송 과정에서 형성되어 가는 것이라는 말은 이와 같은 인간의 유한계성과 오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열린 마음으로 재판과정에 드러나는 모든 사실과 증거들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또 그럼으로써 점진적으로 자신의 심증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판결을 선고할 때까지도 과연 피고인이 유죄인지 또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고, 그런 경우에는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 원칙'에 따라 판결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위반, 경찰공무원법위반,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1심 법원이 무죄판결을 선고한 것을 두고, 이것이 정치권에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라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여·야 정치권의 입장차에 따라 이번 판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결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넘어서서 판결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정쟁의 대상으로 삼거나 재판부를 향하여 인신공격적 발언을 하는 행태는 온당치 못하다. 판결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재판부를 미화하거나 비하한다면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할 여지는 좁아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번 판결내용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는 그 누구도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국민의 신뢰가 없는 사법부는 그 존립기반을 가질 수 없는 것이므로, 법관은 인간의 유한계성과 오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소송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끊임없이 형성해 가는 진지한 노력을 보임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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