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이제껏 적지 않은 해를 지내옴으로써 나 자신을 어느 정도 아니까, 올해에 나는 스스로 생각할 때 지키기 힘들 것 같거나 혹은 내키기 않아 하지 않을 게 거의 확실한 것들은 애초에 계획에 넣지 않고, 무리하게 너무 많은 것을 하고자 욕심내지도 않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만 하되 그 일에 더욱 집중해 최선을 다하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바빠서였는지 귀찮아서였는지 아니면 굳이 보러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인지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껏 살면서 새해 해돋이를 보러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올해는 왠지 나도 해돋이라는 것을 한 번 보러 가고 싶어져서 다녀왔다. 해는 매일 뜨고 또 매일 지지만 우리는 그냥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뿐, 고개를 올려 눈으로 직접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날이 밝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어두워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자고 일어나보니, 혹은 뭔가에 열중해서 하다가 문득 창밖의 색을 보고 그저 시간의 경과를 깨달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현실에 치여 매일매일 자연을 감상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는 게 대부분이다. 무엇을 하든 혹은 그렇지 않든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만큼은, 해야 할 일도 잠시 미루고 잠도 참아가면서 새해를 맞아 처음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지켜보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해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산이든 바다든 찾아가는 수고도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풍경을 보며 새해에 대한 다짐을 굳게 하고 소망을 빈다.
나는 새해 해돋이를 보러 식장산에 가기로 정하고 1월 1일의 아직은 깜깜한 새벽, 식장산행에 올랐다. 세상은 마치 한밤중처럼 어두컴컴하고 바깥 공기는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웠지만, 곳곳에 수두룩하게 보이는 불빛들이 많은 인파를 짐작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산을 타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모든 잡념들이 사라지고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여 산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얼마쯤 오르자 벌써 숨이 차오르는 것 같았지만, 표지판을 발견할 때마다 힘이 났다. 그렇게 몇 개의 표지판을 지났을까. 암흑처럼 깜깜했던 세상이 조금씩 밝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 발걸음을 내딛자 올라오면서는 미처 가늠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 눈에 보였다.
모두들 어떤 소원을 빌고 어떤 각오를 다지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걸까.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연세가 꽤 있는 노인들도 있고 아직 어리지만 씩씩하게 올라온 어린 아이들,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젊은 연인들까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마침내 조금씩 해가 떠오르자 일시에 조용해지더니 모두 숨을 죽이고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한 새벽의 빛깔을 서서히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해를 보자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것도 잠시, 차츰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해에 나의 다짐과 소원들을 담고자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되뇌었다. 나는 미술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문화예술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기울여 올 한 해 동안 좋은 전시들을 기획할 것을, 그리고 미술관이나 전시회 역시 자주 다니며 많이 보고 느낌으로써 예술적, 미적 감각을 키우기 위해 애쓸 것을 새해 첫 해돋이를 보며 다짐했다. 아울러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해 주는 예술분야가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해처럼 융성하기를 기원했다. 2014년 청마의 해, 푸른 말처럼 강한 생동감과 힘을 가지고 끝까지 기운차게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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