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곤 대전노숙인지원센터 소장 |
망자는 7~8년 전쯤 거리노숙을 하다가 필자가 일하고 있는 대전광역시노숙인종합지원센터(이하 노숙인 센터)를 찾아와 생활하면서 인력사무소를 다니며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사회복귀를 준비하던 중 재작년에 무릎 연골이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수술하고 회복되면 다시 시작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분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숙인 센터와 무료진료소 등 주변의 도움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준비하던 중 암을 발견했고, 그것도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말기 선고를 받았다.
“소장님, 저 말기래요”라고 말하고는 멍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내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기 인생에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괜찮아요. TV에서 보면 암 말기 선고 받고도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던데요. 시골이나 어디 요양할 수 있는 곳 있으면 알아봐주세요. 인공관절 수술도 할 거에요. 그래야 힘내서 암도 이기죠”라고 말하는 그분을 나는 말없이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담당 실무자로부터 치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의사소견을 전해 듣고는 우리는 그분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아주 오랫동안 노숙인들과 함께 하면서 내게도 노숙인들의 우울함이나 절망이 전이된 탓인지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희망보다는 절망적 상황이 더 익숙하다. 수없이 많은 노숙인들의 죽음을 보면서 이제 나도 그 절망과 한계에 공감하기보다는 하나의 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남은 생애를 보낼 수 있는 요양원을 몇 군데 소개했지만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퇴원을 했다. 가난과 아버지의 폭력이 어린 시절 기억의 전부였고, 인생의 대부분을 극단의 빈곤 속에서 살아야 했으며, 단 한 번도 따뜻한 가정을 가져보지 못했단다. 하지만 그 한계상황 속에서도 '살아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그분에게 찾아온 견디기 쉽지 않은 암의 고통과 절망은 삶보다 죽음을 더 쉽게 선택하게 했을 것이다.
종종 나는 노숙인을 위한 일을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제일 힘든 일은 '사회적 시선'이라고 대답한다.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은 대상자들의 긍정적인 변화에 큰 힘을 얻고 자긍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노숙인들의 긍정적 변화는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런 소극적 변화는 노숙인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더 힘든 것은 노숙인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사회적 시선이다. '노숙'이라는 최극단의 빈곤이라는 한계상황을 견디는 것은 노숙인 본인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다. 하지만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한겨울 칼바람보다 매섭다. 사회부적응자로, 잠재적 위험집단으로, 무용한 존재로, 없어져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회피한다. 반복적이고 굴욕적인 절망으로 인한 자존감의 저하와 사회적 시선으로 인한 소외는 노숙인들을 더 절망하게 하고 더 이상 사회로 발돋움하기 힘든 족쇄가 된다.
'자본'은 '자본'을 생산한다. 자본 없는 생산은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정된 자본획득의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에게 정해지는 분배의 불공평은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때문에 불평등한 기회로 인한 가난의 양산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획득경쟁의 승자와 패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극단적이다. '자본'이 곧 '권력'이 되고 그 권력구조에서 밀려나고 멀어진 최북단에서는 끊임없이 노숙인이 양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노숙인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들의 인생을 재생산하고 사회로 재진입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한계상황에 대한 사회적 포용도 기대하기 어렵다.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았던 한 사람이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죽음이 매우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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