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온]고생을 사서라도 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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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온]고생을 사서라도 시키는 것

[중도춘추]한기온 제일교육문화센터 이사장

  • 승인 2014-01-15 15:20
  • 신문게재 2014-01-16 16면
  • 한기온 제일교육문화센터 이사장한기온 제일교육문화센터 이사장
▲ 한기온 제일교육문화센터 이사장
▲ 한기온 제일교육문화센터 이사장
'개천에서 용이 나고 큰 그릇은 오래 걸려 만들어지고 대통령은 시골 출신이 많다'는 등의 얘기들은 모두 큰 사람이 만들어지려면 수난과 고난의 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간장만 담을 수 있던 작은 종지가 흰 쌀밥을 담는 밥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장인의 손에 의해 다시 깨져야 한다. 깨져서 다시 으깨어지고 원래의 흙 상태로 돌아갔다가 다른 흙이 덧보태져서 다시 빚어져야 하고 불구덩이 속을 들어가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다시 하얗게 빛나는 밥그릇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간장 종지가 밥그릇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시련과 고난, 즉 고생을 지나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여러 인생의 정의들 중 몇 안 되는 확실한 정의일지도 모른다.

중국 한나라 장군 한신이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그의 군사들은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오합지졸이었던 반면, 조나라의 군사는 숫자도 훨씬 많았고, 훈련도 잘 되어 있었다.

이 때 한신이 사용한 전략이 그 유명한 물을 등지고 싸운다는 '배수진(背水陣)'이다. 도망갈 곳이 없었던 한신의 군대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워 훨씬 강대한 조나라의 군대를 물리쳤다. 그래서 '배수진'이란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죽기를 각오하고 일에 매달리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어렸을 때, 농촌에 살았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배수진을 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다음해 1~2월이면 바닥을 드러냈고, 보리는 5~6월까지 여물지 않아 2~3개월 동안을 거의 굶다시피 했었다. 매년 양식이 없어 고통을 겪었던 내 또래의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때에는 유난히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났다. 가난한 집 아이일수록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다.

근래에는 배수진을 친 가정을 찾기 힘들다. 아이들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겠지”라고 생각할 만큼 생활이 윤택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를 거의 볼 수 없다. 개천이 없어졌으니 용이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개천이 없어졌다고 해서 아이들이 고생을 모르고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는 말이 있듯이, 아이들이 고생을 조금 더하더라도 콩나물보다는 콩나무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인 중에 고생탕을 먹지 않은 사람은 없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중장보병(重葬步兵)에 편입되어 세 번이나 전투를 치렀다. 당시에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 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기에 소크라테스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쓴 고생탕을 먹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왕족이었지만, 왕의 미움을 사 노예로 팔려갔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풀려난 적이 있다. 그 시절 노예의 생활은 우리나라 시골집에서 기르는 견공(犬公)보다 못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플라톤 또한 대단한 고생탕을 먹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고생탕이 그들로 하여금 더 강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게 했다. 생사를 다투는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이 없기에 매사에 담대하고 적극적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고생탕'을 많이 먹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먹지 않으려고 버틴다.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1~2년에 한번씩 여행을 다녔다. 명승고적지를 보기 전 날 나는 아이들에게 그곳에 대해 미리 공부를 시킨다. 아이들은 여행하기도 피곤한데, 다음날 구경할 곳에 대해 공부까지 하라고 하니 좋아할 리가 없다. 이런 것은 약소한 고생탕이다. 하지만 이런 약소한 고생탕도 자주 먹으면 아이들이 콩나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앞으로도 계속 먹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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