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규문 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 |
수업을 마친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가 아이를 만나자마자 끌어안으며 재미있었냐고 묻는다. 아이는 무지 재미있었다고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하며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한다. 대전시민대학 옆 골목길에서 몇 분이 큰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시를 낭송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밤 10시 넘어 제빵수업을 마친 학습자들이 케이크 상자 하나씩을 들고 나오면서 다음 주에 보자며 웃음 띤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집에 가서 가족들 앞에 의기양양하게 케이크를 펼쳐 놓을 행복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수업이 한창인 요리실에 들어갔더니 어느 분이 나를 발견하곤 움칫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평소 목에 힘이 좀 들어가 있는 분이 요리 강습을 받는 것이 쑥스러운 눈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이런 분도 변하고 있구나 하고.
어느 기관의 정년퇴직을 앞둔 분들의 위탁교육을 맡았다. 처음의 마땅찮은 표정이 3개월 뒤 수료식에서는 행복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는데 이제 자신감이 생겼다는 분, 달라진 생활 모습에 부인이 이토록 만족해 한 적이 없다는 분, 퇴직과 동시에 각자 뿔뿔이 흩어졌을 분들이 학습동아리를 결성하여 대전시민대학을 중심으로 평생 의미 있는 활동을 함께 하기로 했다면서 다들 고마워한다.
육십 중반에 처음 가야금을 시작한 분이 서툰 솜씨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사람들과 어울려 무언가를 배운다는 자체가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입에 달고 살던 아프다는 말보다 바쁘다는 말을 하는 자신이 신기하고, 아리랑 한 곡만 뜯을 줄 알아도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벌써 몇 곡을 배운 것이 재산을 얻은 것보다 더 행복해서 꿈인지 생시인지 한단다.
대전시민대학에서 일어나는 행복한 변화의 모습들이다. 행복을 느끼는 시민이 늘어나면 대전이 행복해진다.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가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이 행복해지면 주변의 열 사람이 행복을 느끼게 되고 그 열 사람이 또 백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그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닌 지역공동체 모두의 일인 것이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으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느 연구에서 다양한 자료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니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해도 행복의 증가율은 8~15%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원하는 것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 더 오랜 기간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목표 자체보다는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등산의 맛이 정상 정복이 아닌 것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변해야 한다. 어쩌면 변화하는 세상만큼 인간 내부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남도 힘들게 하고 자신도 어려운지 모른다.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존재가 될 때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사람은 스스로 변화를 이끌고 변화를 창조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될 때 진정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과 함께하는 행복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무언가를 경험해서 그 결과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학습이라 하고 인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교육이라 한다면 학습과 교육의 본질도 그 핵심은 변화에 있다. 바람직한 변화가 기대될 때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수 있다는 기대, 가능성, 희망, 변화가 행복을 만든다. 그러면 우리는 현재의 작은 것에도 행복해질 수 있다. 공자님의 말씀을 전하는 논어 첫마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바로 학습이 주는 행복에 대한 것이다. 대전시민대학은 행복한 변화를 일어나게 만드는 동력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