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찬 한밭대산업경영공학과 교수 |
우리나라의 대학이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등교육법 제28조)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대학교육은 개인의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학술을 연마하여 장차 국가와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사회구성원을 양성함에 그 역할이 있다.
대학교육에서 강조되는 하나는 창조적 인재의 양성이다. 창조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독창성 개발을 위한 교육과 환경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독창성 개발을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고 그 능력을 개발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주입식 수업에 습관화된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창의성을 익히고 개발하고 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세계적인 문자를 창조한 한국 사람들이 그 우수성에 비해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의성은 호기심과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호기심과 의문에 대한 해답이나 대안은 다양한 독서와 경험을 통하여 이뤄진다. 전공은 물론 다양한 교양서적을 익힘으로써 생각하는(思考的) 대학생으로서 자기만의 창의성을 계발할 수 있는 것이다. 호기심을 유발하고 의문을 갖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자신, 학우 및 교수와 끝없이 토론하는 강의방법도 창의성 개발을 위한 일안(一案)일 것이다. 정신적 학습(사고적으로 새롭게 하기)과 육체적 훈련(반복적으로 따라하기)의 조화 있는 교육을 통하여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요즘 말하는 주문식 교육은 어떤 면에서는 자칫 학생들의 사고를 편협하게 하여 창의성을 제한하는 요소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있다. 생각하는 인재교육(정신적 양성)을 대학이 소신 있게 실천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대학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을 발전시키는 것 또한 대학의 역할이다. 대학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고대 수렵사회와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작은 사회이나마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단합하여 노동의 대가를 얻음으로써 그 삶과 사회를 유지해야 했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은 이러한 단결과 화합에서 멀어져 개인적 수고와 노동의 대가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발전으로 컴퓨터시대를 지나 이제는 모바일 기기가 일상의 이기가 되어 삶을 위한 노동을 개인적 수단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모든 개인은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했던가? 인간은 인간사회에서 인간적인 삶을 상호 영위하기 위하여 그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여 사회에 봉사하고 사회적 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위상과 사회적 보호를 인정받는 대학이, 사회적 발전에 공헌해야 할 지성적 인재를 양성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대학 또한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명심보감에 '안으로 훌륭한 부모가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 없이 능히 성취한 사람은 드물다'란 말이 있다. 가르치며 배우는 동시에 학부모의 한 사람인 입장에서 요즘같이 절실하게 통감해 본 적이 없는 옥조라 생각한다. 사회로부터 공감을 받으며 교육철학을 소신 있게 실천하는 대학, 교수들에게는 교육의 기쁨(得天下英才而敎育之 第一樂也)이 있고 학생들에게는 배우는 즐거움(學而時習之不亦說乎)을 주는 대학, 그러한 대학이 많은 사회를 만드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대학은 진정 기쁨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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