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
그럼, 문화정책의 우선순위는? 필자는 전통문화의 전승을 첫 번째로, 문화시설 건립을 두 번째로 친다. 이중 전통문화의 전승 정책에 대하여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문화시설 정책, 특히 문화예술 전문공간의 필요성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나라 공공 문화시설 건립의 개략적인 역사를 더듬어본다. 7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문화정책은 유·무형 문화재를 겨우 보호하는 수준이었다. 1972년 문예진흥법이 제정되고 예술·예술가 지원 정책이 전개되는 속에서도, 80년대 벽두까지 문화시설 건립 정책은 최소로 추진된다. 해방 이후 1981년까지 세워진 공공 문화시설은 국립박물관, 국립국악원, 국립극장,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 그리고 문화시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각 지역의 시민회관 등이다.
1981년 정부는 '80년대 새문화정책'을 통해 '문화시설의 사회교육 역할 제고'를 정책기조의 하나로 설정한다. 이어 1983년 '제5차 경제사회발전5개년수정계획(문화부문)'에 '국민의 문화향수 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문화시설의 확충'을 밝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문화시설 건립 정책의 첫 선언이다. 그 실천 방안으로 1984년 입안된 '지방문화중흥5개년계획'에 따라 각 지역에 종합문예회관 등이 지어지기 시작한다. 문예회관 건립 정책의 경우 1998년 '새문화관광정책'에서 국·공립 공연장 248개를 짓겠다는 계획으로 정리된다. 국·공립 공연장은 209개이며, 예술의전당, 아트센터, 아트홀 등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2012 전국문화기반시설총람]
문예진흥법시행령에 따르면, 문화시설에는 공연장·영화상영관 등 공연시설, 박물관·미술관 등 전시시설, 도서관·문고 등 도서시설, 문화의집·복지회관 등 지역문화복지시설, 그리고 지방문화원·국악원·전수회관 등 문화보급·전수시설이 있다. 영화상영관과 기업 소유의 몇몇 공연장·미술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화시설은 엄청난 건축비가 들어 공공부문이 짓고 운영할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 더 큰 까닭은 이들 문화시설이 공공재적 성격이 있는 데다 시장실패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문화시설은 전문공간화를 추구할 때다. 특히 예술 공간의 경우 장르별·기능별 특화 전략이 절실하다. 지역적 균형이나 안배도 고려해야겠지만 전략적인 집적화(集積化, cluster)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집적화는 시민의 접근성과 여러 공간들 간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다. 기계적·산술적인 지역 분산 정책은 공간 이용도를 떨어뜨리고 경상운영비를 증가시켜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대전의 경우 언제나 수요가 넘치는 음악전문공연장을 문화예술의전당 울타리 안에 짓고, 앙상블홀을 연극·무용전문공연장으로 새로이 자리 매김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 대극장 아트홀, 음악 및 연극·무용 극장, 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국악당 등을 대전의 자랑인 한밭수목원과 갑천 가에 집적화한다면, 대전의 품격은 정녕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그럼, 원도심은? 뮤지컬전용극장을 짓자. 생각해보라. 시대의 대세인 뮤지컬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도 최적이 아닌가? 아울러 대흥동 지역의 연극 소극장들을 개선하여 시민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무용전용 소극장도 꾸며 무용 창작·발표와 감상 기회를 넓히면 좋을 것이다. 극장별 차별화와 특성화 전략도 필요하다. 문화예술 전문공간은 한 도시의 정주 가치와 시민의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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