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표 대덕대 총장 |
막상 퇴직하고 나와 보니 만만하게 만날 친구나 마땅하게 오갈 데가 없어 '경로(敬老)대학'에 나온다는 것이 중론이다. 강의가 있는 날이 기다려지고 설레 전날부터 준비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는 기분을 알 것 같다면서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고 신변잡기에서부터 자식에게 못하는 얘기까지 풀어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노트를 꺼내놓고 꼬박 메모를 하는 이도 있다. 공동급식으로 점심 대접받고 삼삼오오 카페로 옮겨 고운 선율에 차 한 잔 하는 맛이 백미라고 하면서도 무엇인가 아쉬움이 짙게 드리워진 듯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기대수명이 100세라고 하는 요즈음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던 시대에 비유하면 실제 나이에 0.7을 곱해야 한다는 것이니 40·50대 중년에 불과하지 아니한가. 그래서 새로운 '파워집단'으로 떠오른 것이 6075 신중년 세대다. 하긴 '점점 젊어지시네요' 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 늙었다는 메시지로 알아야 한다지만 뒷방 늙은이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섣부른 노령연금 정책으로 정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다. 전체 인구의 12%인 611만명이 연 총 소비의 18%인 122조를 쓴다는 보고가 있다. 현재 6075세대의 소비는 과거 40·50대와 비슷한 수준이고 과거 건강식품, 의료기기 중심의 '실버마케팅'이 본질적으로 변하고 있다. 서울 예술의 전당 전체 공연 고객의 10%가 이들이고, 유료 회원 7400명중 20%가 신중년이라고 한다. 아직도 우리정부나 사회는 능력에 손색이 없고 체력이 왕성한 신중년 세대가 출현했음에도 '65세 미만은 고용', '65세 이상은 복지'라는 울타리를 쳐놓고 노인대학이나 경로당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인생 2모작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의료비도 20%이상 절약된다고 하니 신중년의 고용 비율이 고령화 한국의 미래에 대한 척도 값이 된다.
대학 5학년에 청년 백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는 볼멘 소리가 있을 수 있다. OECD의 1994년 일자리 전략(Job Strategy)은 고령층의 조기퇴직을 장려해, 청년에게 돌려야한다고 권고했으나, 2005년 상생이 가능함을 확인하면서 즉각 폐지와 동시에 양 세대의 고용을 함께 늘려가는 신 일자리 전략(new job strategy) 시행을 내놓고, 급기야 2011년에는 한쪽이 늘면 한 쪽도 함께 는다는 연금 보고서(Pension Market in Focus, 2011)를 채택했다. 영국의 신중년 고용주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여 회사는 젊은 직원들에게 추가 교육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젊은 직원들에 비해 잦은 병가(病暇) 신청으로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하나의 기우(杞憂)였다.”고 말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고장의 제빵업체인 '미스터 베이커리에스'는 한 달 평균 매출이 배로 늘었는데 “신중년을 고용한 것”이라고 한다. 직원 12명중 제빵 기술을 보유한 6명의 젊은이들은 전문적인 일을 맡고, 신중년은 보조업무와 포장작업으로 업무 효율을 높인 것이 주효해 인건비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생산이 늘고 마케팅까지 잘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을 즐기는 이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젊은이들이 힘을 내는 동인이 되고, 직장 분위기 조성은 물론 유무형의 멘토 기능이 일터에 녹아들어 더욱 좋다고 한다.
벽면 녹화를 전문으로 하는 고령자 친화기업인 '행락'은 직원 28명중 20명이 신중년 인데 “노령연금보다 일이 훨씬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쓰임새가 있는 것 같아서 행복하고”, 소원은 “회사가 잘 크는 것”이라고 했다.
아직 노인대학에 나와서는 안 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년도 더 늘려야 하고 복지연령을 일률적으로 제한 할 필요도 없다. 청년과 신중년의 일자리는 동일 선상에 있다. 양질의 대학 못지않게 신중년 아카데미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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