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정부 서울청사의 박찬우(54) 안전행정부 제1차관 집무실은 이어지는 회의와 결재를 받으려 대기하는 직원들로 붐볐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정부 3ㆍ0'의 설계자 박 차관을 만났다. 중ㆍ고교 시절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박 차관은 '정부 3ㆍ0'에 대한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직업관료로서 최고직위에 이른 그에게서 정부 정책과 지방행정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새 정부 출범직후인 지난 3월 취임한 박찬우 안전행정부 제1차관은 박근혜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정부 3.0'의 책임을 맡은 것을 '행운'이라고 말했다. 안전행정부 제공 |
▲지난 6월 19일 '정부 3.0' 비전을 선포한 이후 6개월 동안 범정부적인 추진기반을 마련하고, 기관별 계획과 성과를 내는데 주력했다.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투명한 정부 실현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ㆍ공공기관 등이 보유한 2만1087종의 데이터베이스 중 개방 중인 2295종 외에 앞으로 5년 동안 6075종을 추가로 개방한다.
-일선 부처나 지자체에서의 파급효과는 어떤 것이 있나.
▲'정부 3.0'은 개방ㆍ공유ㆍ소통ㆍ협력의 가치를 업무 전 영역에 적용해 기관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ㆍ관행을 바꾸어가는 정부 운영시스템의 혁신이다. 국민의 청구가 없더라도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사전에 공개되고, 부처 등 기관끼리의 정보공유도 확대되고 있다. 일례로 관세청과 국세청이 불법 외환거래정보와 역외 탈세정보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연간 1600억원의 세수를 증가시킬 수 있었다. 건강보험공단이 가진 건강검진 정보를 도로교통공단과 공유해 운전면허 발급시 시력ㆍ청력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됨으로써 연간 300만명의 국민이 혜택을 받고 161억원 정도의 비용을 절감하게 된 것도 파급 효과 중 하나다.
-올 한해 역점적으로 '정부 3.0' 시책을 펼쳐왔다. 지방에 변화가 있는가.
▲지방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있으려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내면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단체장이 의지를 가져야 한다. 무슨일이든 기관장이 관심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직까지 시ㆍ도나 시ㆍ군ㆍ구 단위까지의 확산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시책이 추진된지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아 물리적으로 시간이 짧았다.
어떤 사업을 하기 전에 정보를 공개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사전에 수렴하라는 것이 '정부 3.0'의 취지인데, 결정을 먼저하고 집행하는 과정 반대에 직면해 정책이나 사업이 표류하는 관행이 많이 남아있다. 현재 정부의 갈등과제가 170개가 있다. 이 과제들은 지난 정부부터 해결이 안돼 현 정부로 넘어온 것이다. 이 과제들 대부분은 과거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그 해결방식이 '정부 3.0'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모든 이해당사자가 모여서 정보를 개방ㆍ공유하고, 소통하면서 해결방향을 찾는 것이다. 중앙부처든 지자체든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고, 사업을 집행하면 좀 더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결과가 도출된다. 그것이 '정부 3.0' 추진 의도다.
-세종시로의 정부 부처 2단계 이전이 시작됐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의 이전시기에 대해 논란이 많다.
▲정부 부처 2단계 이전과 함께 행정의 중심은 사실상 세종시로 옮겨졌다.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해 정부기관의 안착과 함께 주거ㆍ교통ㆍ교육 등의 정부여건이 조기에 안정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는 현재 과천과 세종청사에 임시로 입주해 있다. 세종시 이전 시기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제16조)에 따라 공청회와 관계기관협의, 대통령 승인, 관보고시 등의 절차를 거쳐 결정된다. 현재 이러한 후속 절차를 진행 중이다.
-논산 부시장 시절 시장 권한대행을 했고, 대전시 행정부시장을 경험했다. 지방행정에 대한 생각은.
▲여러가지 관점이 있는데 개인적인 초기 느낌은 한 지역이 손에 잡힌다는 점이었다. 올바른 비전이나 계획을 갖고 시민들과 협력하며 만들어가면 품격있고, 멋진 도시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행정을 하는 사람들의 하나의 꿈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송도 신도시로 파견나갔던 감사원 직원을 만난 적이 있다. 임기가 끝났는데도 감사원으로 복직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봤다. 허허벌판에 문화나 도시민의 삶을 담을 하나의 신도시를 만들고, 자신의 철학이나 전문가들의 생각을 투영해서 계획 도시를 만들어내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것이 지방 행정가, 도시 행정가의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방행정에 대해 아쉬운 점들도 눈에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구조적으로 지방자치를 하기가 어렵다. 지방재정이 어렵다 보니 국가사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현재 8대2인 국세와 지방세 재정구조를 합리적으로, 전향적으로 바꿀 필요성이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자체에도 있다. 지방재정이 어려운데 경전철ㆍ호화청사 등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피해가 주민들한테 돌아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재원이 어려운 구조지만 주어진 여건하에서 지역발전을 견인할 자치역량을 축적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방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정부가 개입할 수 밖에 없다. 투ㆍ융자 심사라든가 지방채 발행에 중앙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지방자치가 거꾸로 가게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아직까지 지방자치가 공무원에 의한, 행정관청에 의한 일방통행식 행정이 많다. '정부 3.0'과도 연관이 있는데 의사결정 구조에 주민이 참여하고, 지혜를 모으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부족하다.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되려면 민ㆍ관협치가 현장에서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지방자치다.
-직업 행정관료로서 최고위직에 올랐다. 공직에 대한 의미를 둔다면.
▲원래 대학다니면서 공직을 지망했고, 학교 졸업하던 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평생 한우물을 파왔다. 1981년 4월 26일 공직을 시작했으니 32년 6개월이 됐다. 나름대로 후회없이 한 길로 달려왔다. 직업 관료로서 마무리하는 입장이다. 처음 공직을 시작했을 때 행정절차법을 제정하는 일에 참여했다.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참여하도록 만든 법이다. 열린 정부를 지향하는 것인데 '정부 3.0'과 같은 맥락을 지닌 법이다. 공직을 처음 시작하면서 국민이 정책에 참여하는 행정절차법 제정에 참여하고, 공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정부 3.0' 정책을 총괄하는 것이 어쩌면 운명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수미상관(首尾相關 처음과 끝이 서로 이어 통함)의 느낌이다. 공직자로서 운이 좋고, 행운이라는 생각이다.
-천안이 고향인데 서울 용산고로 진학했다. 고향의 의미와 중ㆍ고교 시절 생각은.
▲그 당시 서울과 대전으로 많이 유학을 갔다.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서울 진학을 권유하셨다. 고향은 영원한 안식처다. 초등학교 시절 이사한 천안 오룡동 단독주택에서 어린시절을 다 보냈다. 부모님 두분 다 돌아가신 후 아직 그 집을 소유하고 있다. 공직에서 은퇴하면 내려가 살려고 한다. 중ㆍ고교 시절 사실은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교직에 대한 선망도 있었다. 학생들과 같이 서로 대화하고, 호흡하는 것이 좋았다. 얼마전에도 덕성여고 교장선생님의 요청으로 특강을 했다. 강의를 하거나 학생들과 대화하면 지쳐있다가도 기운이 솟는다.
-오랜시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좌우명이 있을 것 같다.
▲선공후사(先公後私ㆍ공적인 일을 먼저하고 사사로운 일을 나중에 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ㆍ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다), 사무사(思無邪ㆍ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다. 공직에 있다면 누구라도 공적인 일을 먼저하고 사적인 일을 나중에 하는 선공후사를 생각할 것이다. 공직생활이라는 것이 늘 사람과 만나게 되다보니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살아계실 적 어머니는 공직자 부패관련 뉴스만 나오면 바로 전화를 하셨다. “돈 없이도 살 수 있으니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목적이 있는 삶'도 좋아하는 말이다. SNS에도 그 말이 적혀있다. 개인의 의지나 욕구도 있지만 좀 더 큰 뜻에 역할을 하고 기여를 하는, 이런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시장 출마설이 있다.
▲공직자 특히 고위공직자는 사심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 하는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조직ㆍ인사ㆍ전자정부 등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본연의 업무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대담=김대중 정치부국장
●박찬우 차관은…
1959년 천안에서 육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천안 남산초등학교와 천안중을 졸업한 박 차관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 용산고로 진학했다. 성균관대(행정학)를 졸업한 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 특허청ㆍ총무처 사무관과 총무처 고시훈련국 서기관ㆍ국무총리행정조정실 세계화추진기획단 기획과장ㆍ국무총리비서실 의전담당관ㆍ대통령비서실 행정관ㆍ논산시 부시장(시장권한대행)을 지냈다.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 기획예산담당관, 국가기록원장, 대전시 행정부시장,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장(차관급)을 역임하고 새 정부 출범직후인 3월 14일 차관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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