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택]수능 후 고3 교실에 관용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은택]수능 후 고3 교실에 관용을

[교육단상]이은택 부여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13-12-17 14:08
  • 신문게재 2013-12-18 16면
  • 이은택 부여고등학교 교사이은택 부여고등학교 교사
▲ 이은택 부여고등학교 교사
▲ 이은택 부여고등학교 교사
한 때 '저기 사람하고 군인이 간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 말의 중심 의미는 '사람하고 군인'에 있고 이 말은 군인은 사람도 아니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군인 생활이 사람으로 견디기는 어려울 만큼 힘들었던 시절에 쓰이던 말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저기 사람하고 고3이 간다'는 말로 변형되어 쓰이고 있다. 이 말에는 '고3으로서의 1년 생활은 사람으로서의 정상적인 생활이라 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고3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다 학습에 대한 압박감으로 1년을 지내며 그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불행(?)하게도 나는 최근 5년 연속 고3 학생들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곁에서 본 그들은 고3의 1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버티'어 내고 있었다. '견디'고 '버티'는 정도로 인생을 논한다면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1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견디고 버티어 내다가 '수능'을 치르고 나면 일순 모든 불안감과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수능 이후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오히려 수능 전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능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학생은 좌절감에다 패배의식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수능 후의 고3학생들의 속은 숯덩이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최근 여러 언론에 수능 후의 고3 교실이 기사화되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라는 것인지, 또는 그럴싸한 대안을 마련하라는 것인지 모호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고3교실의 혼란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논조가 대부분이었다. 매년 수능 후의 고3교실의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올해는 유독 고3교실이 더 혼란스럽게 된 데에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올해 수능은 국어와 영어에서 쉽고 어려운 유형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따라서 상위권 학생이라도 상대적으로 국어와 영어의 등급 따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선택이 2과목으로 줄면서 이 또한 등급 따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대학이 탐구과목의 반영을 2과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에게 이른바 버리는(?) 과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3과목을 보고 2과목을 반영했던 작년이나, 4과목을 보고 2과목을 반영하던 재작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동안 탐구과목은 국·영·수 기초가 없는 학생들이 등급을 따기 위한 희망의 샘물 같은 것이었지만 올해 학생들에게 탐구과목은 절망만 안겨 주었다.

이렇게 거의 모든 과목의 등급 따기가 예년에 비해 어려워졌지만 대학의 수시전형에 사용하는 최저학력기준은 전혀 낮추어지지 않았다. 수시에 원서를 내놓고 최저학력기준을 맞추려는 학생들에게 올해 수능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요지부동의 난공불락이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고3 교실은 멘붕 상태의 혼란에 빠져 있고 고3 수험생들은 수능 이후에도 또다시 '견디'고 '버티'어 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속사정을 알 리 없는(아니 더 잘 알 수도 있을) 언론은 겉으로 보이는 풍경만 보도해 고3학생들의 마음을 더 시커멓게 태웠다. 유치원 과정을 제외한다 해도 우리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년, 거기에다 앞에서 말했던 '사람이 아닌 고3'의 생활 1년을 더하여 12년을 학교에서 전념하며 생활한다. 그 12년 동안 이 땅의 고3 학생들은 수능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수능만을 바라보고 공부해 왔다. 그러나 기대와 다른 수능 성적의 결과로 그들은 자신을 인생의 패배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변하는 입시 제도와, 인생을 단 한 번의 시험에 걸어야 하는 수능의 모순을 단번에 해결할 묘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12년 동안 죽자사자 공부해 온 학생들을 잠깐 동안이라도 그냥 그대로 너그럽게 보아 주자는 것이다. 그냥 그대로 너그럽게 보아주는 그것만이 바로 12년 동안 공부해온 고3 학생들에게 이 땅의 어른들이 베푸는 단 한 번의 관용일 테니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5.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