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형수 대전 서부교육장 |
거의 동일한 사항에 대하여 원인을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내 행동을 설명할 때는 그 원인을 주로 외적, 즉 상황적 요인으로 해석한다. 반면, 내가 관찰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말할 때는 그 원인을 행위자의 내적, 즉 기질적 요인으로 설명한다. 이것을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이라 부른다. 자신의 행위는 행위자로서 그 행위에 대한 정보가 많으나, 상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정보가 적어 이러한 편차가 생긴다고 심리학에서는 말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자기중심적인 판단에 의해 찬반으로만 갈려 상대방의 잘못만 지적하고 파헤치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다.
대전 학생의 학교폭력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통계치가 며칠 전 발표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왜 그랬니?' '쟤가 저를 때렸어요.' '아니에요 쟤가 먼저 욕을 했어요.' 일어난 상황은 동일한데 그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호출되어 온 부모도 자기 자식의 잘못보다는 남의 자식 잘못을 찾기에 분주하다. 교사는 아무리 지도를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는 얘기만 한다. 학교폭력에 대해서 문제점은 많이 지적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은 학생 본인과 학교의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교사, 교육청의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기실 학교에서도 그런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의 지도가 절실함에도 사후 약방문으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지도에도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교육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과 학교만의 문제로 원인을 돌리지 말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부모는 부모대로 내가 잘못한 점은 없나?
학교는 학교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들의 지도를 제대로 해왔는지? 사회는 그들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한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반구저기(反求諸己)는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을 탓하지 않고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하(夏)나라의 시조인 우(禹)임금의 아들 백계(伯啓)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맹자(孟子)의 이루상(離婁上)편에도 “행하여도 얻지 못하거든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구할 것이니(行有不得者皆反求諸己), 자신의 몸이 바르면 천하가 돌아올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남의 잘못은 지나치지 못하는 똑똑한 사람. 너무나 많은 똑똑한 사람들을 위하여 한번쯤 던져보고 싶은 고사성어다. 사실 '내 탓이요'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실제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탓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은 쌍방의 문제로 일어난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으로만 치부하려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의 해결점은 찾지 못하고 갈등과 혼란만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교육의 문제이든 사회 국가적 문제이든 남을 탓하기 전에 각자가 '내 탓이요'라는 생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면 어떨까? 개인 각자가 모두 '내 탓이요.'라고 한다면 이것이 모여 '우리 탓이요'가 되며, 이럴 때 더 근원적인 시초에서부터 해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생각에서 이러한 제안을 해본다.
아울러 어른은 어린이의 모델링이다. 그래서 교육대학부터 선생님은 학생들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해야 된다고 가르친다. 가정과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규칙도 규범도 잘 지키고 있다. 오히려 잘 지키지 않는 것은 어른들이다. 모범이 되어야할 어른들은 그러하지 못하면서 학생에게만 원인을 돌리는 것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아직은 미성숙 된 학생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쯤 이해해 보고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주며 같이 울어도 줄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한다.
가정, 학교, 사회, 국가가 모두 '내 탓이요'라는 생각으로 그들과 함께할 때 우리 모두는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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