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목마와 숙녀의 잔영(殘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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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목마와 숙녀의 잔영(殘影)

[문화초대석]김우영 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 승인 2013-12-01 14:07
  • 신문게재 2013-12-02 16면
  • 김우영 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김우영 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 김우영 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 김우영 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지난 주말 서울의 저공회(著公會)문학단체 송년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서대전역으로 갔다. 2층 대합실에는 잘 아는 까망 '정상은 사진작가'의 격조높은 사진을 비롯 사진동인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짙게 드리우며 늦가을 쓸쓸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저만치 뎅그라니 서 있는 역 플랫폼 시스널에 불이 들어오고 뚜-- 하고 긴 목 즈려빼며 서울행 열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춘다. 언제나 그렇듯 가고 오는 나그네들의 발걸음 사이로 휘리릭--- 찬 바람이 분다. 외투깃을 세우고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차창 밖으로는 늦가을이 물러가고 겨울이 다가옴을 마른 빈 들판이 말해주고 있었다. 문득, 박인환(朴寅煥.1926~1956)시인의 시에 박인희 가수가 감성어린 분위기로 부른 불후의 명시 낭송 '목마와 숙녀'가 생각이 난다. 쓸쓸하고 연말 이맘때면 낭만가객(漫歌客)에 의해 많이 애송되는 목마와 숙녀에 대하여 조용히 눈을 감고 음미를 본다.

'목마와 숙녀'는 시낭송을 배우는 사람들이 즐겨 암송하는 로망의 시다. 박인희 가수처럼 가련한 감정의 이입으로 멋지게 시를 낭송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목마와 숙녀' 시 자체가 길어 외우기가 쉽지 않고 박인환 시인과 박인희 가수처럼 애상과 허무주의적 감정의 이입과 고저장단(高低長短) 운용이 용이하지 않는데에 기인하고 있다.

젊은 나이 31세로 요절한 박인환 시인은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平壤醫專)중퇴, 서울 종로에서 마리서사(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많은 시인들과 알게 되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시 '목마와 숙녀'는 6·25 전쟁 이후의 상실감과 허무의식을 드러낸 시 로서 부서지고 퇴색하며 떠나는 모든 것에 대한 절망감과 애상을 노래했다. 평소 통속을 거부한 '댄디 보이'로 소문난 박인환 시인은 훤칠한 키와 수려한 얼굴는 당대 문인 중에서 최고의 멋쟁이였다. 서구 취향에 도시적 감성으로 무장한 그는 앞서가는 날카로운 포스트 모더니스트였다. 그는 여름에도 정장을 잘 입었다고 한다.

“여름은 통속이고 거지야. 겨울이 와야 두툼한 홈스펀 양복도 입고 바바리도 걸치고 머플러도 날리고 모자도 쓸 게 아니야?” 박인환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 은 전쟁과 폐허의 허무의식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지상의 공간을 떠난 목마와 숙녀는 남은 사람들에게 희미한 의식으로 잔해로 남고, 가치를 상실한 비애는 원죄의 운명으로 표현된다. 천상의 공간에서 방울소리를 울리는 목마와 지상의 공간에서 무거운 실존의 허무주의와 센티멘털리즘에 빠진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 시인의 시 '목마와 숙녀' 작품속 영국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외투 주머니에 돌을 가득 집어넣고 영국 우즈 강가에서 자살하기까지 처연한 운명을 살았다. 1941년 전란이었고 누구보다 예민했다. 문학평론가의 딸로 태어난 울프는 어려서 정신질환을 앓았다. 열세 살 나이에 마주한 어머니의 죽음, 스물두 살 때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 어린 시절 의붓오빠에게 당한 성추행 기억도 그녀를 평생 따라다녔다. 이처럼 문단과 대중의 관심과 소설가의 명성도 그녀에게 행복을 안기지는 못했다. 남편 '레너드 울프'의 손에 이끌려 의사와 상담을 한 바로 다음날 울프는 우즈강가에서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쓸쓸한 여류작가였다.

세월이 가면 잊혀질까, 목마와 숙녀의 잔영(殘影)! 찬 바람이 불고 쓸쓸한 연말. 우리는 정녕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쓸쓸한 늦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계절의 길목. 중원땅 한밭벌 보문산방 보헤미안을 태운 열차는 뚜 -- 하고 기적소리 울리며 중원평야를 가로질러 서울로 서울로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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