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병로 한밭대 건설환경조형대 학장 |
집단의 틀 속에서 획일화된 목표를 세우며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상호 약탈적 경쟁과 승자독식의 문화를 양산했다.때문에 짧은 기간 동안 가난을 극복하고 고도성장을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입식교육과 칸막이 경쟁 방식이 획일적 사고를 가져왔다. 또한 창의성과 나눔, 배려의 협력문화를 후퇴시켜 개성이 중시되는 창조사회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집단의 성장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던 시대는 끝났다. 산업시대에서는 국가의 경제성장이 곧 개인의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졌다. 더구나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강요된 개인의 희생정책이 결과적으로 집단에게도 불이익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밀양송전탑 분쟁을 보면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 집단의 편익을 증대시키는 그동안의 다수결주의가 잘 먹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조직의 성장을 몇몇 사회지도자가 이끄는 엘리트 리더십도 무너졌다.
지난 40여년간 이어졌던 三金(3김)시대.
필자는 어린시절 정치는 3명의 김씨만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에 지금은 5년 뒤 대통령 후보자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엘리트 정치인이 없다. 정치는 물론, 경제·문화·사회 모든 분야에서 소수 엘리트 중심의 과거에서 구성원의 중지를 모으는 상향식 집단 리더 체계로 변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이같은 현상은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한국사회는 창조사회이자 감성사회에 진입했다고 한다. 즉, 작금의 감성사회는 산업사회와 지식기반사회의 집단적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창조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창의적 행동이 모여 집단의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억지로 시키면 하면서도 기쁘지 않고 성과를 내지도 못한다. 창조사회는 개인의 행복이 집단행복의 근간인 만큼 개성이 존중돼야 한다. 개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나 타고난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성취동기도 커진다.
하지만, 행복을 기대와 희망에 대해 실현된 만족과 기쁨이라고 본다면, 같은 성과를 두고도 기대와 희망의 크기에 따라 행복지수가 달라질 것이다. 때문에 행복감의 크기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또 비교의 수단을 주변의 타인과 비교해 만족감을 평가한다.
그러나 자신에게만 한정하는 만큼, 상대적 또는 절대적인 행복감 차이는 개인에게 있다. 이러한 개인의 행복지수를 사회가 직접 높여줄 수 없으나 환경은 만들어 줘야 한다.
개인의 행복이 조직의 행복으로 이어지고, 조직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만큼, 조직은 개인의 창의적 특성과 끼·재능 등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부탄왕국이다.
1976년부터 국왕은 국민행복지수 개념을 도입해 물질적인 풍요만아니라 정신적 풍요로움의 지원정책으로 양극화와 환경오염을 줄이면서도 연평균 7%의 탄탄한 경제성장을 이룬 모델국가가 됐다. 조직 구성원의 개인행복과 협력이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항상 행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성취의 결과를 통해서만 행복을 얻으려면 성취할 확률은 낮다. 목표를 이뤄 가는 일상의 과정에서는 적은 노력으로도 행복을 얻기 쉽다. 또 즐겁게 일하면 결과적으로 목표달성도 쉬워진다.
지금 이 순간, 충실히 자신으로부터 행복을 얻고 쌓아가자. 개인이 행복하지 않고서는 조직이나 나라가 행복해 질 수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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