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도묵 국제라이온스 356-B지구 총재, 대전·충남 경영자 총협회장 |
결혼 시즌이다. 여느 해와 같이 올해도 많은 이들이 열매 맺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들른 예식장이 많다. 하객석에 앉아서 나는 저들의 열매가 튼실하길 기원한다. 서로 신뢰와 믿음으로 조화를 이룬 사랑의 결정체이길 소망해 본다.
문득 이 순간이 열매 맺음이 아니라 시작이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결혼이란 환상에 젖으면 안 돼, 오늘 이 순간은 열매 맺음이 아니라 결혼생활의 시작이야. 결혼생활이란 멋진 레스토랑에서 만들어진 행복의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두 사람이 이마를 맞대고 사랑과 신뢰로 행복의 요리를 만들어가는 거야.'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며 예식이 치러지는 동안 그들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기원한다.
우리는 참으로 조급한 것 같다. 결혼을 완결의 꼭짓점으로 보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없애버리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흔히 주례사에 보면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이 감초처럼 들어간다. 그럴까. 너무 조급해 두 사람 간의 거리를 싹둑 잘라내니 실망이 크고 불화가 끼어드는 것이다. 부부생활이란 서로의 거리를 인정하고 상대를 신뢰하며 내가 상대에 맞추어가는 것일 텐데, 나와 똑같은 것으로 인식하니 엇박자가 나는 것이란 생각이다.
지인들과 마주 앉았다. 자주 만나는 사이이며, 지난달에 아들 혼사를 치른 분도 있다. 그분은 아마 혼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한 달 전 처지도 떠올렸을 것이다. 같이 식사 중에 그분이 한마디 한다. “이번에 혼사를 치르다 보니 참 황당합디다.”
그리하여 시작된 이야기는 식사 내내 이어졌다. 그의 이야기가 그렇게 오래 끌게 된 이유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는 증거가 될 법했다. 그분이 내놓은 이야기는 아주 작은 이야기였지만, 많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다.
혼사를 마치고 감사의 편지를 띄우려 하니 아는 주소가 거의 없더라는 것이다. 온라인 모바일 환경이 활성화되면서 청첩장도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세태에 황당해하던 나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자녀의 혼사 알림을 편리만을 추구해 예의도 저버린 채 폰으로 날리는 세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런 연락을 받고 나면 오라는 것인지, 계좌번호로 축의금만 보내라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선다.
이야기를 꺼낸 그분의 말은 자신이 청첩장을 챙겨 보낸 곳은 헤아렸기에 문제가 없었으나, 모임에서 카페에 처리하거나 서로 들어 들어 오신 분들에게는 감사의 편지를 전달할 길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서로 문자나 메일로 연락하다 보니 주위 사람들의 주소를 알고 지내던 시절이 아니더란 말이다. 이런 경우 감사의 뜻을 휴대전화기에 문자로 날린다는 것은 더더욱 결례일 것이고, 통화하는 데에 한 달이 걸리더란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가볍게 듣다 보니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늘날의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편리만을 추구하다 보니 사람 노릇을 저버리는 삶을 뻔뻔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편리의 추구는 결국 조급성과 타협해 나타난다. 이 모두가 깊은 정 나누고 상대를 배려하던 우리의 따뜻한 심성이 메말라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아픈 자화상이다. 모든 면에서 시간을 단축하고, 편리만을 추구하다 보니,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예의는 벌써 내려놓은 지 오래고, 과정은 무시해도 되는 세상이다. 아파트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 것은 바보이고, 엘리베이터 단추 하나만 누르면 원하는 층에 데려다 준다. 시간의 단축을 위해 온라인 모바일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해도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세상을 망가뜨리지 않으며 살 수는 없을까. 이 결혼시즌에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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