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길호·ETRI 홍보팀장 |
따라서 과거에는 육안으로 바다를 보며 지형적 특성을 살폈고, 별자리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15세기부터는 중국이 개발한 나침반을 이용해 위치를 가늠하곤 했다.
현대 선박에는 디지털화된 눈이 달려있다. 바로 '선박용 레이더'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보다 정밀하게 자신의 위치와 지형, 장애물 등을 파악하며 수월하게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간 우리나라는 디지털레이더의 핵심 기술이 없어, 외국산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래서 값도 비싸고 사후관리도 안되기 일쑤였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디지털 레이더가 군사 기술이라는 이유로 기술 수출을 제한키도 했다.
이러한 실정에서, ETRI가 최근 고출력 반도체 전력증폭기 개발에 성공하였다. 순수 국산 기술의 개발이라는 점에서 기술 독립이란 의미를 갖는 동시에, 품질도 기존의 것보다 훨씬 향상하였다. 기존의 디지털 레이더들은 진공관 방식의 전력 증폭기를 사용하고 있어, 기존 출력 소자의 수명이 3000여 시간에 불과했지만, 이번에 개발한 디지털 레이더는 질화갈륨(GaN) 소자를 이용하여 수명이 16배 더 길고 전력 밀도가 최대 10배, 전력 효율이 30% 이상 우수하다.
지난 7월 현대중공업을 통해 선박에 탑재해 시연해본 결과, 디지털 레이더는 감지 대상 식별력이 우수하고, 악천후에도 30m 이내의 바위섬들도 또렷이 보여줬다. 그만큼 해상도가 월등히 좋다. 질화갈륨을 이용한 국내 연구는 그동안 국내에서 많이 진행돼왔지만, 연구에 성공해서 칩 형태로 개발한 것은 ETRI가 처음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칩들은 앞으로 선박 뿐 아니라 국방기술의 레이더는 물론, 우주·항공, 자동차, 기상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전망이다.
전 세계 레이더 시장규모는 2918년까지 약 830억불에 달하고, 이 중 30%는 전력증폭기 가격이 차지한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이 얼마나 영향력 있고 중요한 기술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항해를 위한 선박의 눈은 이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이 모두 수입해서만 쓸 수 있다면 기술이 진화하는 만큼 부담도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조속히 상용화에 성공하여 향후 3~4년 이내에 우리가 건조한 선박에 우리의 디지털레이더가 탑재되기를 기대한다.
똑똑한 스마트 선박이 또 탄생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ETRI는 SAN(Ship Area Network)이라는 선박네트워크 통신을 이용해, 똑똑한 선박 1탄을 만들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선박 140여척에 탑재했다. 물론 수주량 기준이다. 이렇듯 우리의 똑똑한 선박들은 앞으로 뱃길을 훤히 터줄 것이며, 국방이나 통신레이더 등에도 활약이 예상된다. 국내 토종기술의 개발로 인해 이젠 우리도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정길호·ETRI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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