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묵 한밭대 총장 |
기술자립 없는 산업성장은 사상누각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 기술이전 제한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때 존슨 대통령이 지원해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설립이 우리나라가 자체기술개발을 시작한 원년이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대덕 연구 학원도시'가 계획되었다. 즉 1973년 1월 17일 최형섭 과기처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2연구단지 건설계획을 보고한 뒤 연구단지 건설이 시작되어 1974년 표준과학연구원 입주를 시작으로 1978년까지 5개 출연연구소와 1개의 기업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흩어져 있던 해외 고급 과학기술자들이 대덕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 후 40년이 지난 지금 30개의 정부출연연구원, 11개의 공공기관, 30여개의 대기업 연구소를 비롯한 1312개의 기업체가 들어선 한국형 혁신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덕은 40년간 30조원을 투자하여 10배인 300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고 한다. 국내외에 등록된 특허수만도 5만 7000건이나 되고, 만명 이상의 박사급연구원을 포함하여 2만 7000명의 고급두뇌가 일하고 있는 세계적인 연구도시로 발전했다.
대덕은 당초 설립목적인 기술개발의 매개체, 연구개발, 기술훈련과 정보제공, 기술도입 대행 및 분배, 기술지도 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특히 세계첨단기술을 도입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었으며, 미래 산업을 위한 신기술을 발굴하고 개발해 오늘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만드는데 기여해 왔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CDMA 기술로 중국의 이동통신시장을 우리 시장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나 1997년 IMF 위기는 한때 대덕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량 해고 뿐만 아니라 정권마다 시도되는 통폐합 구조조정의 중압감과 PBS등 성과위주관리시스템 도입으로 근무환경은 악화되었고 이로 인해 고급두뇌가 대거 대학이나 해외로 유출되는 아픔도 겪었다.
지금 대덕은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새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정책은 기술선도형 산업정책으로 지금까지 선진국 베끼기 연구개발을 넘어서서 선도적 기술개발을 요구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오던 연구개발 위주의 역할을 벗어나서 연구 성과의 사업화, 벤처생태계 조성, 글로벌 환경구축, 대덕기술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다. 대덕은 미국의 실리콘밸리, 일본의 쓰쿠바, 프랑스의 소피아앙티폴리스 등과 같이 민간주도의 혁신생태도시와는 다르게 정부 주도형 도시로 탄생되었기 때문에 벤처창업과 산업인프라가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각각의 연구원내에는 이를 위한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고 주변에는 창업지원 인프라와 투자금융을 비롯한 많은 지원기관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제 대덕 40년의 영욕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정작 대전시민은 대덕과의 문화적 단절로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새로운 미래 사회의 중심지가 바로 대전이 되기 위해서는 대덕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대덕은 정부가 주도하는 혁신도시를 뛰어넘어 대전시민, 산업 그리고 대학이 함께 만들어가는 연구혁신생태도시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대전 지역사회와 대덕의 문화적 통합은 물론이고 대덕 연구생태환경을 구축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대덕은 미래를 여는 창조경제의 선구자로서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점점 가열되는 총성 없는 기술전쟁 시대에서 우리는 혹독하게 추운 절망의 겨울을 맞이할 것인지 따뜻한 희망의 봄을 맞이할 것인지? 그래서 대덕의 40주년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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