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기억하는 스승은…
40여년전 까까머리 학창시절 제자가 기억하는 스승은 어떤 모습일까? 박명규 화백이 1968년 교단에 부임해서 만난 첫 제자 김용수씨(59ㆍ논산중 19기ㆍ조각가)가 '사제 동행전'에 참여하며 쓴 글을 지면에 옮겨본다.<편집자 주>
▲1971년 논산중 교사시절 미술반원들과 함께 한 박명규 화백. |
이것이 내가 중2때 선생님의 첫 부임지였던 논산중학교에서 박명규 선생님께 들은 말입니다. 그랬기에 미술반 활동은 자율이었고 늘 평화였습니다.
돌아보니 세월은 지나간 흔적도 없는데, 스승은 고희를 넘고 그 제자들 머릿결도 어느새 서리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그 스승과 제자들이, 한길을 걸어온 자취를 모아 정을 나누는 기회를 갖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더욱이 사모님이신 이명자 선생님의 제자들과 함께 전시회를 여니, 옛날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이명자 선생님은 이웃한 논산여중고에 재직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들국화처럼 청초하고 조용하셨는데 박 선생님과 교제중이셨습니다. 가끔 주말이면 두 학교 미술반 학생들이 모여 야외사생을 다녔습니다.
사생이 끝나면 학교로 돌아와 공동평가회를 했는데, 두 분의 품평은 매우 진지하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격높은 품평회를 가졌다는 것은, 두분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피는 혈육으로 잇고, 정신은 제자가 잇는 것이니, 스승과 제자의 정신이 살아있으면 그 나라 학풍이 살고 학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니, 스승없는 제자는 외롭고, 제자 없는 스승 또한 초라함을 면치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두 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제자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두 분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표요, 본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생을 두고 한 길을 간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고통 또한 동반합니다. 현실은 팍팍하고 이상은 멀리 있습니다. 더욱이 한 나라의 정신사 한 켠을 세우는 일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두 분 선생님은 이 길에서만 꿋꿋이 초지일관하셨으니, 화가로서도 스승으로서도 성공한 삶이 아닌가 합니다. 두 분 선생님 만수무강하소서! <김용수 올림>
--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대전시 서구 둔산동 LH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사제 동행전'에는 박-이 부부의 작품과 함께 두 사람이 교단에서 길러낸 제자들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됐다. 권현칠, 김기권, 김용수, 김재송, 김한연, 김훈곤, 남궁영, 박향순, 백향기, 송미경, 오재옥, 유경자, 윤애수, 이상숙, 임란, 임용운, 정연호, 정우경, 조선영, 최명옥 씨(이상 가나다순) 등 20명이 참여해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제자들과 함께~
이명자 화백의 논산여중 시절 첫 제자 남궁 영씨와 충남여고 시절 제자 임용운, 유경자씨, 박명규씨의 논산중 시절 첫 제자 김용수씨가 ‘사제동행전’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7일 ‘한턱 쏘겠다’는 박-이 부부의 초대로 서구 둔산동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이들 부부는 “제자들이 잘해서, 제자들 덕분에 오늘의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며 "잘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한없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로 제자들에 대한 애틋하고 대견한 마음을 표했다. 이날 스승과 제자 모두 회상에 젖은 가운데 제자 남궁 영씨는 "미술반 시절 미술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이 선생님과 함께 대전에 왔을 때 한밭식당에서 사주셨던 국밥과 큼지막한 깍두기가 지금도 생생하다"며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 한토막을 풀어내기도 했다. |
▲1984년 금산여고 교사시절 미술반과 함께 한 이명자 화백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