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일]어느 노 시인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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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어느 노 시인의 사랑 이야기

[중도시평]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

  • 승인 2013-11-05 14:53
  • 신문게재 2013-11-06 16면
  • 한성일 문화독자부장한성일 문화독자부장
▲ 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
▲ 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
어느 날 홀연히 잔잔한 일상에 찾아 온 한 잎의 사랑이 있었답니다. 그 하늘거리는 사랑에 겨워 몰래 가슴 적시는 시인이 쓴 '시가 있는 사랑 이야기'인 신간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를 읽었습니다.

책 갈피에 '한성일 부국장님/ 살아있음이 행복입니다!'라는 친필을 써서 보내주신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나태주 시인입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태어나는 시인의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사랑 이야기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을 지닌 시인의 곱디 고운 언어로 반짝입니다.

이 책을 읽다가 교과서에도 게재됐고, 만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의 시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됐습니다. // '오래/보고 싶었다//오래/만나지 못했다//잘 있노라니/그것만 고마웠다'

각종 동창회에서 즐겨 회자된다는 '안부'라는 제목의 그의 시 전문입니다. 시인의 애틋한 러브스토리 사연을 알고 나니 이 시 역시 시인이 사랑했던 그녀를 지칭하는 듯합니다.

올해로 칠순인 시인은 5년전인 65세때 40년이나 연하인 막내딸뻘 25세의 처녀 '슬이'를 사랑하게 됐답니다. 이 즈음의 그의 시는 모두 '슬이'를 향한 연시로 가득차 있는 듯 합니다. 영화화되어 더욱 주목을 받았던 박범신 소설가의 '은교'가 연상되더군요. 시인은 스스로 기뻐하면서 꽃이 되는 사랑, 그 사랑으로 상대방을 더욱 아름다운 꽃으로 받드는 사랑, 그런 사랑을 꿈꾼다고 했습니다. 만 4년간 노 시인의 시심을 불태웠던 슬이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며 시인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엔 글로 쓰기를 많이 망설였는데 이렇게 쓰기를 잘했다. 글을 쓰면서 더욱 맑은 심정으로 슬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때로는 슬프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행복하고 따뜻한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인은 '만약 이 글들이 책으로 나오게 된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윤문영 화백의 그림을 몇 점 받아서 글의 사이사이에 넣고 또 표지화로도 삼았으면 좋겠다. 우리 이쁜 슬이의 모습을 윤문영 화백만큼 잘 표현해줄 화가를 나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더 가슴 절절한 대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언젠가 나는 세상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되고 슬이는 나이를 먹은 사람이 되겠지. 나이를 먹은 사람이 될 슬이를 위해 이 책을 기념품으로 남기고 싶다. 그래, 네가 이렇게 아름답고 귀여운 처녀였단다. 네가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었고 소중한 아이였단다. 세상 사람 누구한테선가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너도 모르지 않을 터.'

이제 깨닫습니다. 시인의 시들이 투명한 유리알처럼 맑고 서정적인 이유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지극정성으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시인을 통해 아련하고 애틋하고 가슴 뭉클한 작품들로 태어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의 시집들 목차에는 유달리 꽃이름이 많이 들어가 있네요. 시화집 '너도 그렇다'만 봐도 줄장미꽃, 풀꽃, 산수유꽃, 붓꽃, 제비꽃, 앉은뱅이꽃, 들국화가 나오고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에도 제비꽃, 개양귀비,목련꽃, 서양붓꽃, 벚꽃이 나오네요.

'지상에서 숨결 거둔 뒤에라도/사랑했던 마음들끼리 떠돌다가/몇 송이 어여쁜 꽃으로나 피어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시인은 '꽃의 시인'입니다.

이번 가을은 유난히 꽃도, 단풍도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요즘 저는 꽃만 보면 그 즉시 스마트폰 사진첩 폴더에 담아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와 밴드와 카톡 등 SNS에서 공유하는 일이 큰 즐거움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가 꽃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카톡 친구들은 수시로 아름다운 꽃 사진을 찍어 보내줍니다. 나태주 시인은 '꽃을 보기만 하면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지만 어여쁜 꽃들을 보고 안 찍을 재간이 없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행복한 마음이 찾아듭니다.

꽃이 진 자리를 만산홍엽이 대신하는 만추의 계절에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따뜻하고 충만한 사랑의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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