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현 대전지방보훈청장 |
1905년 11월 17일에는 일제가 고종을 협박하고 매국노들을 매수해 을사조약 즉, 제2차한일협약을 늑결(結)했다. 이로 인해 조선은 국권이 강탈당한 채 형식적인 국명만을 가진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써 조선의 외교권은 완전히 박탈됐고 영국을 비롯한 주한 외국공관들도 철수했다.
고종은 이와 같은 무력에 의한 불법적인 을사오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조선의 주권수호를 호소할 목적으로 1907년 6월 헤이그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헤이그특사파견 사실을 안 일제는 1907년 7월 20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 하여금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는 대신 순종이 즉위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11월 17일은 올해로 제74주기가 되는 순국선열의 날이 된다. 이 날은 중국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39년 11월 21일에 임시총회를 개최하는 자리에서 지정천, 차이석을 비롯한 6인이 발의,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의결했다. 11월 17일을 기념일로 선택한 것은 위의 1905년 11월 17일에 체결된 을사늑약의 치욕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1997년부터는 순국선열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이들의 위훈을 기리고자 법정기념일이 됐다.
11월에 우리가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 또 있다. 바로 2010년 11월 23일 북한에 의해 자행된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이다.이 사건은 연평부대의 K-9 자주포 해상사격 훈련 도중 북한이 기습적으로 방사포 170여발을 연평도 민간 시설을 포함한 부대시설에 무차별 공격한 사건이었다. 북한의 포격으로 해병 장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군부대 공사 중인 민간인 2명이 사망한 북한의 불법적인 침략행위였다.
연평부대원들은 자신의 방탄모가 화염에 불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응사격을 실시하는 등 투철한 군인정신을 발휘했다. 또한 연평도 주민들의 신속하고 안전한 대피를 위해 장병이 주민들의 대피를 돕는 등 군인 본분을 다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했다. 과정에서 사망한 故 서정우 하사는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도 조국수호라는 일념 하나로 포연 속에서 싸우다 적의 포탄에 전사했다. 故 문광욱 일병은 기습적으로 퍼붓는 북한의 포격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임무 완수를 위해 가장 먼저 달려나가 전투준비를 하던 중 북한군의 포격에 전사했다.
북한은 2010년 3월, 천안함을 피격시킴으로써 46인의 해군장병을 무참하게 희생시킨 데 이어 그 어떤 사과도 없이 같은 해 11월에 연평도에 대한 기습적인 포격으로 도발을 자행했다. 북한의 남침을 향한 도발은 정해진 시간이 있을 수 없으며 공격 장소가 따로 정해지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끊임없는 핵과 미사일 개발과 위협으로 이제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 인류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이처럼 일상의 평온함 속에서도 11월의 역사 속에는 세계조류에 부응하지 못한 채 을사늑약을 체결 당하는 힘없는 민족의 수모와 수치의 비통한 역사가 있었다. 또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구국의 재단에 기꺼이 목숨을 버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잊어서는 안 될 치욕과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순국선열의 날을 제정했던 역사적인 날이 돌아온다. 또한 최근에는 북한으로부터 6.25전쟁 도발 이후 최초로 우리의 남한 본토가 기습적인 포격을 받은 야만적인 포격을 받은 과거가 있었다.
역사는 과거와 단절된 산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진실이자 교훈이 되고 미래를 준비하는 설계도와도 같다. 11월을 맞이하며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대한민국을 지키다 산화하신 국가유공자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는 소중한 한 달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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