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영 공주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 |
'관상'이라는 영화가 있다. 개봉 1주일 만에 200만 관객이 몰린 흥행이다. 얼굴판이 좋아야 출세한다나. 정승 얼굴 따로 있고, 머슴 상판 따로 있단다. '사람의 얼굴 따위를 보고 성질·운명을 판단'하는 게 관상(觀相)이다.
“머리는 하늘이니 높고 둥글어야 하고/ 해와 달은 눈이니 맑고 빛나야 하며/ 이마와 코는 산악이니 보기 좋게 솟아야 하고/ 나무와 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니 맑고 수려해야 한다.// 이렇듯 사람의 얼굴에는/ 자연의 이치 그대로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담겨져 있으니/ 그 자체로 우주이다.”
영화 <관상>에서 주인공 관상가 '내경'의 말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는 거다. 맞다. 틀린 건 아니다. 몸에도, 손에도, 발가락에도 우주 질서가 있다. 그러나 삶이 얼굴을 만드는 게지, 얼굴이 인생을 만드는 게 아니다.
미모 추구는 본능이다. 헌데 '미모=돈'이란 등식이 뿌리박혀 있다. 미모는 돈 들여 만드는 것으로 착각한다. 세우고 깎고 벗기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한 연구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순수 미모' 분야에 쏟아버린 돈이 무려 10조원이라나. 한 해 소형 승용차 10만 대를 뭉개버린 것이다. 쌍꺼풀 수술 한 번 하는데 150만원이란다. 남성인데도 얼굴 다듬고 고치는데 3000만 원 들여 몸단장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쩌다 '돈이 외모를 만드는 세상'이 됐을까. 성형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성형 수술비를 대출하는 은행도 있으니 말이다. 연이자 12~14%로 일명 '뷰티업(beauty業)' 대출서비스다. 성형을 권하는 미친 사회가 된 거다. 공부에 관하여는 내로라는 우수한 인재가 의과대학에 몰린다. 그것도 세우고 깎고 벗기는 성형외과로 몰린다.
텔레비전 보면 실감난다. 등장하는 인물을 보라. '생얼' 만나기 쉽지 않다. 요즘은 초등생까지도 화장(化粧)하고 학교에 간다고 한다. 화장에도 급이 있단다. 10대의 화장은 단장, 20대의 그것은 분장, 30대는 변장, 40대는 위장, 50대는 도장, 60대 이상은 환장이라나.
그렇다. 어찌 보면 인생은 외모로 결판나는지 모른다. 입학시험에도 면접을 통과해야 하고, 예뻐야 소개팅도 연결된다. 맞선 볼 땐 때 빼고 광내며, 취직시험에서도 면접관은 인상부터 읽는다. 인상 좋으면 덕 볼 때도 있다.
인상(人相)이란 '사람 얼굴 생김새'다. '얼굴'이란 뭔가? '얼'과 '굴'이 합해진 토박이말이다. 얼은 '정신'이다. '얼빠진 녀석'이란 말이 있다. '정신 나간' 사람을 빗댄 표현이다. '얼간이'는 '주책없고 모자라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요, '얼떨떨함'은 '정신을 가다듬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겨레의 얼'이란 표현도 있다. 겨레가 갖출 올바른 '정신 줏대'를 의미한다. 얼이 제대로 박혀야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바로 선다.
얼굴에서 '굴'은 뭘까? '골'이 변해 '굴'이 된 거다. 골은 “'뼛골' 또는 '머릿골'의 준말”이다. 즉 뼈대, 골격이다. 얼굴이란 '정신이 박힌 골격'이다. 정신이 바르면 골격이 바르고, 정신이 비뚤면 얼굴도 비뚤은 거다. 성형으로 위장한다고 반듯한 게 아니다.
정신이 먼저다. 마음이 우선이다. 그래야 얼굴이 바르고, 골격이 바로 서는 거다. 높이고 깎고 세우고 덕지덕지 찍어 바르며 호들갑 떨지 말라. 제발 재건축하지 마라. 얼굴은 아파트처럼 리모델링하는 게 아니다.
정신부터 바르게 세우자. 예쁜 마음 가꾸자. 그것이 진정 행복수술이다. '진금불도(眞金不鍍)'라 하지 않던가! 순금은 도금할 필요가 없는 법. 제발 호들갑 떨지 마라. 관상이 아니라 심상(心相)이다. 나라가 뒤틀린 건 성형과 화장발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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