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언제부턴가 방송뉴스를 외면했다.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접한 뉴스들이 1분 남짓 토막으로 나오니 굳이 눈길을 줄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소식도 아닌 걸 뉴스로 내보내는 격이었다. 이걸 시청하고 앉아 있는 건 시간만 축내는 꼴이었다.
그뿐이랴. 뉴스가 도무지 뉴스답지 않았다. 모름지기 뉴스란 저널리즘의 결정체다. 저널리즘은 사실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일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대변해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어느새 방송뉴스는 소임을 저버렸다. 지금 공영방송 KBS 9시뉴스는 아예 '땡박뉴스'라 불린다. 정권의 '애완견'으로 전락한 방송뉴스를 보고 있자니 그나마 남은 분별력마저 상실할 지경이다. 방송뉴스는 외면을 넘어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손석희 앵커가 JTBC행을 택하면서 참 말이 많았다. 공정방송의 대명사인 손석희와 탄생할 때부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은 '애물단지' 종합편성채널은 생뚱맞은 조합인 탓이다. 일각에선 그의 행보를 두고 '실망을 넘어 배신'이라 표현했고 '언젠가 토사구팽 당할 것'이란 날선 비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말을 아꼈다. “그에 대한 답은 지금 줄 수 없다. 훗날 평가해주기 바란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이 직접 뉴스9을 진행한지 한 달 반가량 지났다. 이른 평가일 수 있겠으나 기대 이상이다. 주변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시청률도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 무엇이 '손석희 뉴스'를 히트상품으로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다루는 소재에 거침이 없다.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지상파방송에서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이슈를 도마 위에 올린다. 손석희 뉴스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와 국정원 직원 허위진술을 유일하게 보도했다. 아무리 잘해도 삼성을 거스르진 못할 것이란 게 세간의 예측이었다. JTBC는 삼성방송이니까. 이 통념조차 깨뜨렸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등에서 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돕는 '반올림' 활동을 보도한 데 이어 삼성그룹의 노조 무력화 전략을 집중 조명했다. 당시 손석희 앵커가 뉴스 첫머리에서 날린 멘트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무노조 경영… 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그런 빛 뒤에는 무노조 전략이 갖는 그늘도 있어 왔다.”
뉴스를 다루는 방식도 흥미롭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방송뉴스는 어떤 사안을 다루던 천편일률이었다. 앵커가 운을 떼고 기자가 사전 취재해 녹화한 리포트가 나가는 식으로. 리포트 역시 기자가 몇 문장 읽고 전문가 한두 명의 코멘트를 끼워 넣고 다시 기자가 마무리하는 구성방식이 전부였다. 아이템 당 리포트도 절대 1분30초를 넘지 않았다. 간혹 앵커와 기자가 대담하더라도 미리 작성한 대본을 어색하게 읽는 수준이었다.
손석희 뉴스는 이 틀을 탈피했다. 현안의 중심인물을 직접 스튜디오에 불러 얘기 나누고 이해당사자들끼리 짧게나마 토론을 붙이기도 한다. 취재기자도 리포트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연결을 통해 또는 스튜디오에 나와 앵커와 직문직답한다. 현장성이 강화되다 보니 뉴스에 생기가 돈다. 손석희 특유의 송곳 질문 덕분에 조마조마하고 짜릿짜릿한 긴장감이 들기도 한다. 몰입도가 높아지니 복잡한 사안도 쉽게 다가온다.
얼핏 손석희 뉴스의 매력은 기존 뉴스와 차별화된 창의적 접근의 소산처럼 보인다. 톺아보면 그렇지 않다. 손석희 뉴스가 다룬 소재와 내용은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정면 응시해야 마땅한 것이다. 이를 기존 방송뉴스가 묵살하는 바람에 생긴 착시현상일 뿐이다. 심층보도를 기조로 한 뉴스 형식과 포맷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방향에 다름 아니다. 변화를 두려워한 기존 방송사가 진작 나서지 못했을 뿐이다. 결국 손석희 뉴스의 성공 비결은 언론의 기본을 지키고 관습을 타파한 실행력에 있는 셈이다. 기본과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다시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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