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원]'단추장미'를 아시나요?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배국원]'단추장미'를 아시나요?

[시사 에세이]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승인 2013-10-28 14:07
  • 신문게재 2013-10-29 16면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언어가 변화한다는 사실은 당연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쓰는 말이 변화하는 속도는 신형 휴대폰이 출시되는 속도보다도 더 빠른 것 같아 따라잡기 힘들다. 특히 청소년들이 쓰는 말들이 어찌나 낯설고 조야(粗野)한지 ('조야'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낯설겠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정말 통역이 필요할 정도다. 간략하게 표현해야 하는 스마트폰 영향으로 인터넷 줄임말이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라 도무지 정상적으로는 해석이 안되는 단어뿐이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 '정줄놓'(정신줄 놓았구나),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답정너'(답은 정해졌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등은 아예 외국어 시험에 나와야 되는 단어들 아닌가?

이 밖에도 청소년들이 즐겨 쓰는 줄임말이 많이 있는데 입으로 전하기 곤란한 욕설이나 비속어들도 많아 마음이 편치 않다. 예수께서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마태 15:11)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비천한 말로 본의 아니게 심성을 어지럽혀 나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안타깝다. 그러나 거꾸로 그들이 왜 그런 말을 즐겨 쓰는지, 그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도 든다. 청소년들의 줄임말과 비속어에는 나름대로 사회에 대한 비판과 냉소, 개인의 좌절과 분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이라는 말은 제목만 거창한 책들에 대한 비판이고, '열폭'(열등감 폭발)은 화 잘 내는 사람에 대한 희화적 대치방법이고, '모솔'(모태 솔로)은 평생 연애를 한 번도 못해 본 사람의 애교 섞인 푸념일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표현처럼 우리 청소년들의 애환과 기대를 담은 '언어놀이'(language game)는 나름대로 활발하게 성업 중이다.

그 중에서 '장미단추'라는 줄임말이 특히 주목을 끈다. “장거리에서 보면 미인이지만, 단거리에서 보면 추녀”라는 뜻이 '장미단추'라고 하는데 너무 재미있는 표현이어서 한참 웃을 수 있었다. 사실 이 말이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담은 말인 것 같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대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참으로 멀리서 볼 때는 그럴 듯 하다가도 가까이서 알게 될 때에 실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사회 지도자들의 비리가 폭로될 때마다 우리는 '장미단추'를 경험하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옛날 로마인들도 “시종(侍從) 앞에 영웅은 없다”는 격언을 즐겨 말했던 것 같다.

'장미단추'는 학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지적이 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학자들은 시각적 전환, 즉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진화론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마이클 베히(Behe) 교수는 거시생물학적 관점이 아니라 분자생물학적 관점에서 진화론을 반박할 수 있다는 다윈의 블랙박스라는 책을 발간하여 활발한 논쟁을 유발하였다.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진화가 맞는 것 같지만 현미경으로 분석해보니 진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주장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은 과연 무슨 도구를 가지고 관찰하여야 더욱 의미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 인생도 망원경을 가지고 장거리에서 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현미경을 가지고 가까이서 보면 초라하게 보이는 것 아닐까? 너무 자세히 알면 다친다는 농담처럼 우리의 너무 근시안적 태도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현미경으로 관찰한다면 제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겹겹이 쌓인 피부각질층 이외에는 보여줄 수 있는게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의 '장미단추'라는 줄임말이 담고 있는 지혜에 경의를 표하면서 그 순서를 약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싶다. '단추장미' 곧 “가까이서 볼 때는 추해보여도, 오랜 세월을 놓고 보면 아름다운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청소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5.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3. aT, '가루쌀 가공식품' 할인대전 진행
  4.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5.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