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
그런데 지난 2011년 중국에서 아리랑을 둘러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무형문화재로 아리랑을 등록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유네스코에도 등재를 신청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가 서둘러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 절차를 밟았고, 지난해 12월 5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확정되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또 한 브랜드인 김치와 김장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워낙 많은 물량이 중국에서 생산되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김치의 경우 동북공정의 일환인 중국의 아리랑 사태와는 또 다른 차원의, 즉 원조 논쟁에까지 잠깐 이르기도 했다. 짝퉁을 두고 벌이는 국제적 논쟁이 이렇게 음식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니.
서로 원조임을 내세우며 갈등을 빚는 경우는 흔하다. 갈비, 국밥, 국수, 부대찌개, 돈가스, 찐빵, 떡볶이 등 음식이나 이를 파는 음식점의 이름이야 대부분 개인 사업자들 간 문제에 그치지만, 지방 도시들 간 다투는 사안들도 많다. 고추, 대게, 녹차, 산수유 등 특산물에서부터 축제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급기야 지난 7월 경남 진주시장이 '진주남강유등축제 베낀 서울등축제 중단'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서울시청사 입구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방 도시들 간 이러한 갈등 사태는 쉬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지역의 정체성 확보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특산물과 축제를 고유 브랜드화하려는 전략을 결코 나무랄 수 없기 때문이다. 향후 지자체들은 지역 축제와 특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키기 위하여 상표 등록에 더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요즘 종편 방송에서 '히든 싱어'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1명의 가수와 5명의 모창자들이 블라인드 뒤에서 한두 소절씩 노래를 부르고, 이를 듣는 청중 평가단 100명이 '진짜 가수'를 찾는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 19일에는 발라드의 황제라는 가수 신승훈이, 엊그제 26일에는 발라드의 황태자라는 조성모가 모창자에게 밀려 우승하지 못했다.
원조보다 더 원조라 생각되는 짝퉁이 있을 수 있고, 또 4곡을 부르는 사이 그것이 현실로 확인되기도 하니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창자에게 원조가 밀릴 수 있는 것은 그 원조의 오래 전 노래를 부르는, 그것도 한두 소절씩만 서로 번갈아 부르는 방식 때문이리라. 원조는 나이를 먹으면서 목소리나 창법이 조금씩은 변하기 마련인데, 모창자들은 음반에 있는 대로 부른다. 청중들이 음반의 목소리를 택할 수밖에.
아리랑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나서부터 몇몇 지자체들이 원조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가방으로 대표되는 해외 명품의 짝퉁이 아무렇지도 않게 판을 치는 속에서도 진짜니 원조니 심지어는 진짜 원조니 하면서 오리지널 타령을 부르는 우리 자화상을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알다가도 모르겠다.
찰리 채플린은 '채플린 흉내 내기'에서 3등을 했다고 한다. 그 일이 채플린의 코미디 인생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신승훈과 조성모의 가수 인생도 그러할 것이며, 오히려 열렬한 짝퉁을 존재하게 하는 원조의 힘은 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원조 신승훈의 말대로 어떤 연유에서든 변할 수밖에 없었던 초심을 되돌아보게 하는 짝퉁의 미학 또한 때로는 멋들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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