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당에서 만난 권광순(69·사진)씨는 권이진 선생의 11대 손으로 유회당에서 3년째 거주하고 있다. 이곳을 지키며 세 번째 봄을 맞고 보냈지만 돌아서면 또 보고 싶을 만큼 봄 풍경을 좋아한다. 그렇게 봄이 가고 배롱나무 붉은 꽃이 지고나면 단풍이 든다. 권씨에게는 계절을 느끼며 사는 이곳의 생활이 곧 신선생활이다.
일곱 살,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왔었고 이제 예순이 훌쩍 넘어 흰머리가 멋진 노신사가 되어 이곳에 다시 왔다. 유회당은 부모사랑 품듯이 자손들을 품어 연어가 회귀하듯 돌아오게 만드나 보다.
유회당에 돌아와 맞은 첫 해는 녹록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장난이었던 높은마루 오르내리기는 힘겹기만 했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도시중심가 아파트에 살 땐 집안에 들어앉으면 절기의 변화는 안중에도 없이 살 수 있었지만 이곳에선 그렇게 살 수 없다. 아궁이에 불을 아무리 지펴도 문풍지 바늘구멍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은 막을 재간이 없다. 몸이 얼른 적응하기를 바라지만 오랜 세월 길들여진 아파트생활을 몸이 금방 떨쳐버리지 못한다. 젊은 날 그렇게 즐겼던 변화는 지금의 권씨에겐 힘겨운 대상이다.
탐방객은 수시로 와서 우물에 돌을 던지고 주변에 쓰레기를 버린다. 우리의 교육이 어떻기에 문화유적지에 와서 이러는지 권씨는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유회당 여기저기를 돌아보면 윗대 할아버지의 삶이 보이고 그 정신이 느껴진다. 긴축재정으로 나라의 살림을 튼튼히 했던 그 분처럼 촘촘하고도 꼼꼼하게 이 집을 지키며 가꿀 것이다.
권씨는 주변의 돕는 사람들과 새 일을 계획하고 있다. 도모하는 일들이 잘 이루어져 유회당이 대전시민의 큰 문화자산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혜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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