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희 금산중앙초 교사 |
교단을 밟은 지 9년 8개월. 돌이켜 보면 짧지 않은 그 시간동안 아이들과 함께 뛰고 놀고 공부하며 선생 전재희의 생각과 마음도 어느새 훌쩍 중년교사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자라난 듯하다. 하지만 신규교사 시절부터-늘 잔잔하게 흐르는 냇물처럼 변치 않는 소리로-마음을 울리는 노래 한 자락이 있다. '소나무야 소나무야'가 그것이다. 변치 않는 모습으로 학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은 마음. 나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소나무 같은 선생님이고 싶다. 10여 년 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가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라고 교대의 문턱에 들어섰고, 대학 4년 동안 그 꿈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실'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선생님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고 말하지 않던가. 막상 교사가 되어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 앞에 섰을 때,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실 만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요즘 신규선생님들은 주어진 일들은 뭐든 잘하는 만능교사이지만, 나에게는 왜 그리 신규 생활이 어려웠던지…. 학생들 가르치는 것은 물론 공문 처리하기, 담당업무 추진하기 등 모든 선생님들이 당연히 수행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무언가의 연속이었다. 항상 무슨 일이든 척척해내는 선배님, 동기나 후배 선생님들이 대단하게만 보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내 꿈이요, 이상인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실'은 진정 꿈이고 이상일 뿐이었다. 사실 교직생활을 7~8년 보냈던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반은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맞다. 어쩌면 그건 시작부터 잘못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실은 선생님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마음에서 교실을 만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늘 핑계거리를 찾았다. 너무 바쁘니까, 시험이 다가오니까, 성적을 올려야하니까 아이들의 마음은 등한시하고 내가 가야할 길만 열심히 달려왔다.
그러다 올해 처음으로 교과전담을 맡아보기로 결심했다. 잠시 아이들과 떨어져 어떻게 해야 나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다. 결핍은 필요를, 필요는 창조를 낳는다고 한다. 교사에게 학생이라는 중요요소가 결핍됨은 나에게 아이들을 더욱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어울리기 위한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담임교사가 아니다보니 동아리를 모집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동아리를 한다는 게 괜한 개인의 욕심인 것만 같아 다른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어렵사리 동아리를 조직하고 동아리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점점 마음의 문이 열리는 듯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학교수업 이외의 시간에 봉사활동이나 우리만의 작은 전시회 등을 해가면서 잊고 있던 마음의 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늘 푸르른 저 나무처럼' 항상 돌아보면 같은 모습으로 두 팔 벌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선생님을.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선생님마다 교육관이 다르고, 뿜어내는 향기와 빛깔이 다르듯이 꿈꾸고 있는 교사상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마음은 하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우리는 분명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의 변치 않는 버팀목이 되고자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언제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는 다시 담임교사를 해보고 싶다. 아홉 명이라는 소규모 동아리 속에서 푸른 마음을 되찾은 것처럼. 이제 더 많은 아이들에게 그 고마움을 되돌려 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학생들 마음의 푸른 쉼터 같은 선생님이 되기를 소망하며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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