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상]이 가을의 특별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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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이 가을의 특별한 인연

[수요광장]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13-10-15 13:54
  • 신문게재 2013-10-16 17면
  • 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
▲ 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
▲ 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
올 가을 나에겐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조선을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홀 일가와 사마천이 바로 그들이다. 홀 일가는 조선회상이라는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조선회상은 19세기초반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들어와 봉사한 홀 일가의 이야기다. 그들 중 샤우드 홀은 우리나라에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보급하고 병원을 세우고 특히 결핵환자들을 위해 일했던 주인공이다. 우리 땅에서 23년간 봉사를 하고 1940년에 추방을 당한 후 인도에서 또 23년 동안 봉사를 했다.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간 후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모와 3살 때 세상을 떠난 여동생 곁인 한국의 양화진에 함께 묻혀있다.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나는 지금도 한국을 사랑합니다. 내가 죽거든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나의 사랑하는 한국, 또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누이동생이 잠들어 있는 한국 땅에 묻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유언했고 그의 소원대로 양화진에 묻혔다.

한국에 건너왔던 초기의 선교사들이 생명과 가정보다 이 땅의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헌신적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의 헌신은 부모로부터 비롯됐다. 홀의 어머니 로제타 홀은 화상을 입은 소녀에게 자신의 피부를 떼어 내 수술을 했고 아버지는 온갖 핍박을 이겨내고 평양에서 환자를 자비로 치료해 주며 봉사를 하다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로제타 홀은 남편과 딸을 잃고 43년간 봉사를 지속하다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만든 병원이 바로 지금의 이대부속병원이다. 자기의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와서 보여준 그들의 헌신은 신에 대한 믿음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명 없이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찬바람에 쓸쓸한 요즘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를 찾아 두리번거릴 것이 아니라 그 시절 홀 일가처럼 사랑의 범위를 한 번 넓혀보면 어떨까? 내가 주는 사랑의 자력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그 누구보다 내 자신이 따뜻한 행복감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이는 사마천이다. 알려진 것처럼 그가 저술한 사기는 천하에 흩어져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옛 문장들을 수집해 역대왕조의 흥망성쇠를 사실에 입각해 쓴 책이다. 하, 은, 주 3대의 개략적인 역사와 진, 한 시대의 역사 등을 포함해 본기 12편을 기록하고 있다. 예약과 법률의 변화, 경제의 변동 등에 관한 8편의 서, 제후의 행적을 기록한 제가 30편, 또한 의를 세우고 천하의 공명을 세운 사람들의 열전 70편, 표 10편을 포함해 도합 130편, 52만 6500자로 역사를 고증했다. '사기'가 최고의 역사서로 칭송받는 것은 중국 최초의 임금 황제에서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중국 3000년의 역사를 인물별로 쓴 획기적인 글이기도 하지만 피로 쓰인 글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나라 때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 사마천의 나이 48세 되던 해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았다. 환관신분으로 굴욕과 멸시를 견디며 자살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역시 사관을 지냈던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고 살아서 혼란스런 역사를 증언해야 하는 사명 때문이었다. 죽음에 못지않은 치욕을 자나 깨나 되씹으며 참고 살아남아 어떻게 해서라도 사기를 완성해야 했던 그의 심정은 사형을 앞둔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있다. '극형을 받으면서도 태연스럽게 부끄러운 빛조차 띠지 않았던 것은 이 책(사기)을 미완성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책을 완성해 명산에 소장하고 각지의 지식인들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저의 수치도 충분히 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설령 이 몸이 산산조각이 난들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이국에서 봉사를 실천한 홀 일가, 궁형이라는 극한 치욕 속에서도 후세를 위해 글을 쓴 사마천. 목숨보다 사명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일들이다. 홀 일가는 의술로, 사마천은 개인의 삶을 통한 역사와 인간을 꿰뚫는 눈으로 공명심을 보이기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묵묵히 실천했다.

가을에 앞 다투어 피는 꽃처럼, 원색으로 물드는 단풍처럼 나를 드러내고 싶을 때도 많다. 사사로운 욕심을 억누를 수 있는 건 가을에 와준 홀 일가와 사마천 덕분이다. 시공을 넘어선 특별한 사람들과의 만남, 이 가을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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