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구]일본의 모순, 매뉴얼 사회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강철구]일본의 모순, 매뉴얼 사회

[시사 에세이]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승인 2013-09-30 14:00
  • 신문게재 2013-10-01 16면
  •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결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기술 선진국이라고 알려져 있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처리를 놓고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하는 바람에 2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바로 매뉴얼에 충실한 국가로 알려진 사회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은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사회구조가 매뉴얼대로 이행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서, 2008년 동북대지진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를 입고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대처하는 모습에 해외 언론들은 일본인의 인내와 질서를 '인류정신의 진화'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이러한 매뉴얼 행동과 침착함은 이때만 드러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도쿄전력이 2012년 7월 전력부족으로 인해 10% 절약운동을 펼쳤을 때 예상을 훨씬 넘은 24%가 절약되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예를 들어 지하철 회사는 운행횟수를 제한했고 시민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절전을 했다.

이것이 바로 재해에 대한 매뉴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칭찬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 하면 매뉴얼에 없으면 행동하지 못하는 피동적이고 획일적인 사회로 인식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한때 칭찬받았던 시스템이 2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을 만들어 내면서 지금은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 위험이 있으면 정부가 위험 경고를 하고 미리 대피시키거나 국민들이 알아서 피난해야 하는데, 정부의 지시만 기다리는 국민도 그렇거니와 지시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드는 일본정부 모두가 지켜만 보고 있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는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두 명만 있으면 줄을 서야하는 매뉴얼 사회가 일본이다. 어쩌면 이게 멋있게 보일 수도 있다. 또 이것이 선진시민의 높은 질서의식이라고 자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탈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일본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이 본능대로 행동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희로애락을 표시하는 유일한 동물인데 이를 너무 억제하게 되면 분명 어딘가에서 그만큼의 부작용은 표출되게 마련이다.

물론 매뉴얼사회의 장점은 단점보다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정해진 과정(process)를 만들어 놓아 누구나 그 일을 처리하고 공유할 수 있게끔 한다는 점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쉽게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의 고도성장에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또 하나를 들자면 책임소재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 수 있어서 매뉴얼에 없는 여분의 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매뉴얼에 없었기 때문에 충분한 핑계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 특유의 매뉴얼 문화는 최근 들어 지속적인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매뉴얼 세대'라고 불리는 20대 청년들이다. 설명서의 지시대로 주어진 대로만 움직이다 보니 창의력과 독창적 사고, 그리고 도전정신 등이 부족하여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과거 한국의 품질 좋은 상품이 일본에서 판매가 어려웠던 이유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매뉴얼이 없어서였다고 하니 일본의 매뉴얼사회를 알만하지 않겠는가?

분명 매뉴얼 사회는 평상시에는 국민들의 생활에 지장이 없게 만드는 시스템이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변수로 등장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재해에 대한 대처에는 분명 한계가 보인다. 매뉴얼대로 살아가는 일본사회, 한편으로 보면 개인적인 감성과 본능을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 불쌍한 사회로 비추기도 하여 활기를 잃은 일본의 모습이 어쩌면 여기에 원인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5.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3. aT, '가루쌀 가공식품' 할인대전 진행
  4.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5.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