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무조건 만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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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무조건 만나게 하라

[목요세평]김희수 건양대 총장

  • 승인 2013-09-25 15:04
  • 신문게재 2013-09-26 20면
  • 김희수 건양대 총장김희수 건양대 총장
▲ 김희수 건양대 총장
▲ 김희수 건양대 총장
계획대로라면 25일 이뤄져야 할 이산가족들의 혈육상봉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상봉 문턱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6, 70년 만에 헤어졌던 혈육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으로 추석 연휴를 지내고 있던 그들에게 갑작스러운 '상봉 연기' 통보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곧 만날 혈육을 생각하며 정성껏 꾸려놓았던 선물보따리만 방 한켠에 을씨년스럽게 놓인 채, 초점 잃은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 이산가족들의 실망감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더욱 울화가 치밀게 한다.

어떠한 정치적 계산으로 천륜(天倫)을 헌신짝같이 내팽개치는 행위는 동양적인 정서로 볼 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사에서 부모와 자식과 형제, 혈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천륜을 소홀히 여기고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금수(禽獸)들이나 하는 짓거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밝혀온 이산가족 상봉행사 연기 이유는 “남한이 대결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결 수단으로 악용하는 있는 것이 누구인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여기에 꼭 들어맞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25일로 예정된 마지막 상봉행사 준비를 하기 위해 금강산에 가 있던 우리 측 실무진 70여 명이 이튿날 황급히 귀경(歸境)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이같은 비상식적인 일은 이제 다반사가 되어 무슨 일이든 실제로 행해져야 하는 것이지 예측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북한 정권의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복잡하여 언제 어디서 돌발적인 행동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바는 우리가 수십 년간 보아왔기 때문에 예측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부모형제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더욱 신봉하는 북한 체제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일이 국가 중대사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조상을 섬기고 부모를 떠받들고 어른을 공경하는 삼강오륜의 정신을 제일로 내세우며 사는 남한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는 사건이 된 것이다.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을 풀기 위한 상봉의 기회를 그렇게 무참히 빼앗아가는 절박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이 먹은 이산가족들에게는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어린 소년이 백발의 늙은이가 되고 새색시였던 아내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지만, 한번 보고, 만져보고,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울음바다'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상봉장의 모습, 그리고는 기약없는 만남을 약속하며 떠나는 버스를 향해 끝없이 손을 흔들다가 돌아서는 그 애처로운 광경마저도 용납치 않겠다는 저의가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1985년에 이어 2000년부터 1년에 한두 차례씩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속되어온 남북이산가족상봉은 지금까지 모두 18회 정도 이루어졌고 화상 상봉은 단 네차례 있었을 뿐이다. 그동안 한 번의 상봉 행사에 많이 잡아 200~300명이 참가했다 하여도 모두 5~6000명에도 못 미치는 숫자이다. 정부 통계에서 6·25때 월남자 수를 대략 70여만으로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상당수의 월남가족들이 그리움을 가슴에 안은 채 세상을 떠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숫자는 더욱 늘어만 갈 것이다.

부모형제가 만나는데 내 가족이 만나는데 정치적 이유, 국제적 이유, 경제적 이유, 사회적 이유, 사상적 이유가 있을 수 없다. 혈육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은 당장 재개되어야 한다. 무조건 재개되어야 한다. 다른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먼저 만난 다음에 따져도 늦지 않는다. 이번에도 가족 상봉을 엿새 앞두고 90대 노인이 별세하여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상봉 신청자의 반 수 가까이가 이미 사망한 상태라고 하니, 북에게 크게 외치고 싶다. “무조건 만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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