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집은 내 삶의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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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집은 내 삶의 증인이다

[세설]정덕재 시인·대전시인터넷방송PD

  • 승인 2013-09-12 14:15
  • 신문게재 2013-09-13 21면
  • 정덕재 시인·대전시인터넷방송PD정덕재 시인·대전시인터넷방송PD
▲ 정덕재 시인·대전시인터넷방송PD
▲ 정덕재 시인·대전시인터넷방송PD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찔한 상황이지만 만취한 상태에서 노숙하지 않고 집에 왔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같은 상황을 사람들은 귀소본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물이 자기의 서식장소나 태어난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가리켜 귀소본능이라고 한다. 사람의 귀소본능은 뿌리깊이 박혀 있는 본연의 성질인지 모른다.

밖에서 밥을 먹는 일이 잦은 직장인이 집에서 식사할 때, 자신도 모르게 '집 밥이 최고야'라는 말을 독백처럼 내뱉곤 한다. 이념의 보수성은 학습을 통해 바뀔 수 있으나 사람의 입맛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한다. 입맛처럼 보수적인 게 없다고 말하는 요리전문가들이 많다. 때문에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보다 어머니가 담근 김치 한 쪽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맛의 향수와 유년의 추억을 달래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고향이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기차표를 사려고 길게 줄 선 인파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저마다 집을 떠난 사연이 다르겠지만, 고향에 대한 추억과 정서는 상당 부분 공통분모를 가질 것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흙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고향에 작은 집 하나를 짓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필자가 아는 목수가 목조주택학교를 운영하는데 수강생 대부분이 거의 50세를 넘은 중년이라고 한다. 이들은 인생 이모작 준비를 위해 직업을 갖거나 내 집을 짓고자 오는 사람들이란다. 평생 자신의 집 한 채를 짓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개는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자리를 옮길 뿐, 스스로 집을 짓기는 쉽지 않다. '집을 짓다 보면 10년은 더 늙는다'라는 말은 그런 어려움을 반증하는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집을 짓는 일을 가리켜 “땅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을 지으러 터를 보러 가면 그 터에 있는 무늬, 이른바 '터무늬'가 '이 자리에 어떤 건물을 지어달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땅과 사람이 가진 사연을 집에 반영해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오랫동안 마을을 굽어보는 나무를 무작정 베지 말고 나무와 어울리는 집을 짓는 게 일종의 '터무늬'일 것이다. 또 그는 집은 불편할수록 좋다고 강조한다. 기분 좋게 만들면서 불편한 집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때문에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창조의 바탕이 되며, 되도록 불편한 삶으로 이끄는 집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집이 정신의 풍요로움을 이끈다는 인식보다 재테크의 수단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쩌면 아파트가 가진 구조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수십 층 높이의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서면서 건물구조의 상승과 하강은 우리의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마음을 품은 집』이라는 책을 쓴 구본준 기자는 “건축은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장”이라며 “이야기를 듣고 나면 기쁨이 깃든 건물도, 분노가 담긴 건물도, 겉으로는 이상해 보였던 건물도 모두 아름답게 보였다”고 말했다. 결국, 집을 통해 인생과 역사,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미다.

『행복의 건축』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집은 식견을 갖춘 증인”이라고 말했다. 집이 자신의 삶을 다 지켜봤다는 의미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 증인 또한 늙어가지만, 경험 많은 지혜의 표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증인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이들도 명절에는 반가운 해후를 한다.

다음 주에는 집을 떠나 다른 집으로 가는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추석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고자 찾는 집, '그 집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기억의 파편을 퍼즐처럼 맞춰가며 집의 기억과 대면하는 것도 명절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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