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도묵 국제라이온스 356-B지구 총재 |
그래서 물결이란 어휘에는 '많음', '풍성함'이란 의미가 함유되어 있는 것 같다. 실개천을 바라보며 물결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듯이, 가뭄에 시달려서 오그라진 작물을 바라보면서 푸른 물결이란 말은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들판에는 푸른 물결이 한창이다. 아침 먼동이 트면서 푸른 물결은 얼굴을 내밀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날의 가뭄을 이겨내고 이제는 도도할 정도로 그 물결이 대단하다. 이것은 여러 차례의 단비가 내려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힘들어 하다가도 단비가 내려주면 작물들은 지난날의 서운함을 잊고 제 할일을 다 한다.
푸른 물결의 작물들이 도도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제 본분을 지키며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잎파랑이에서 필요한 태양 에너지를 부지런히 받아들이고 있는데, 바람이 찾아와 심술을 떨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들은 신이 내려주는 은혜로움에 감사하고 겸허한 자세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그 모습도 어둠이 찾아오면 정지된다. 어둠의 물결이 도래하여 세상을 덮으면 그들은 또다시 몸을 낮추고 새벽을 기다린다. 좌절하지 않고 인고의 시간을 참아낸다. 더러는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거나 번개가 친다 해도 그들은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모두가 질긴 생명을 놓지 않고, 조용히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 머지않아 새벽이 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굳게 믿기에 참아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을 말없이 지켜보며 오늘도 충실히 삶을 꾸리는 사람은 역시 농부다. 그들은 자연의 순환 앞에 요란하지 않고, 당연한 일로 차분히 받아들인다. 가뭄은 가뭄대로, 홍수는 홍수대로, 태풍은 태풍대로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은 일찍이 자연에서 배운 그들만의 삶의 철학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혹여 심한 변화가 찾아온다 해도 당황하지 않고, 그냥 덤덤히 받아들일 뿐이다. 다만 고난이 끝나면 다시 일어설 각오만 키우고 있다.
지금 들판은 온통 푸른 물결로 너울거리고 있다. 좀 지나면 누런 물결로 바뀔 것이고, 결실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 희망이 있기에 농부들은 오늘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침을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어둠의 시간이 혹독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을 뿐이다. 으레 결실을 보기 전에 태풍이 한두 번 온다는 것도 그들은 안다. 그러나 그 태풍이 온다 하여 삶에 차단기를 내리지 않는다. 조금만 할퀴고 가면 다행이고, 심한 상처를 낸다 한들 통곡하지 않고 일어설 기회를 기다린다. 물론 태풍이 없으면 좋겠으나 그러지 않더라도 낙과가 덜 되기를 그들은 신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주문할 뿐이다.
이 건실한 농부들의 삶에서 내 것으로 가져올 것이 있다. 너무 세상을 탓하기보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히 임하는 그들의 자세를 익힐 일이다. 태양의 은혜로움이 있을 때 더 부지런히 일하고, 어둠이 찾아오면 다소곳이 휴식하며 아침을 기다리는 슬기. 이것은 민초들이 몸으로 알려준 삶의 지혜이다.
세상은 온통 푸른 물결이 흐르고 있다. 저 물결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이 요구되었던가. 참고 인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복이다. 저 푸른 물결이 다치지 않고 모두 누렇게 익어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풍요로운 가을을 기대하면서 저 물결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언제나 설렌다. 매년 맞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유별나게 설레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꾸준히 노력한 것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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