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묵 한밭대 총장 |
역사적으로 국가정체성의 형성은 대개 시대사조에 의한 시대정신에 근거하고 있다. 영국의 청교도적 시민정신, 미국의 개척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사상, 프랑스의 계몽사상에서 얻어진 평등박애주의, 그리고 중국의 중화사상은 대표적 시대정신이다.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시대정신이 있었다. 조선의 선비정신이다. 극작가 신봉승씨는 선비정신을 법통, 체통, 도통으로 구별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인 법통, 가문의 유교적 가치관인 체통, 학문지상주의의 도통 등 3통정신이다. 이런 시대정신을 이어받은 우리 헌법은 단군의 홍익인간의 이념을 포함한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은 같은 역사를 가지고 한가지의 언어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공산체제 때문에 정체성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광복 후 많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크고 작은 근현대의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긴 하지만 OECD회원국으로서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일부 국민은 동서냉전종식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진 종속이론과 주체사상을 들고 나와 국헌을 무시하는 이념적 충돌로 국민의 정체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NLL포기사태와 이석기 의원의 국가내란음모사태는 현재 언론보도로만 보면 참으로 답답한 국가정체성을 혼란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국가 기록원에 보관되어야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실종과 조작설로써 헌법에 명시된 국토수호와 사초관리의 책임공방이고 후자는 대한민국의 국헌을 무시한 내란음모 획책에 대한 진실공방이다. 이번 NLL포기사태는 연산군시대의 사초관리에서 비롯된 무오사화와 흡사한 현대판 계사사화(癸巳史禍)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민주화투쟁시대에 있을법한 사건이다. 이런 유사사건들을 처리하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나 중국의 사례에서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를 대는 것을 보면 국가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 수 있다.
올해가 해방 68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 된지도 수십년이 지났다. 우리는 왜 아직도 과거에 머물면서 역사와 국가정통성을 부정하고 이념논쟁을 계속하고 있는가? 중국철학자 펑유란은 그의 저서 『현대 중국철학사』에서 “변증법적으로 역사는 진보한다. 그리고 원수는 반드시 화해한다”고 했다. 이제 유물사관의 낡은 이념은 역사에 묻고 진정한 남북한의 정체성을 통합시킬 수는 없는가? 이런 후진적 정쟁에 국민은 너무 피곤하다. 지금은 새로운 질서의 문명이 일어나고 있는 창조와 변화의 시대다. 시대는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시대를 만든다고 했다. 현명한 우리 국민은 더 이상 구시대적 싸움엔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영웅이 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 정부가 확고한 국가 정체성을 세워주길 기대한다. 그래야 진정한 통일이 되고 우리 민족의 영원한 번영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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