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시골 어느 작은 마을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마을 어귀에 둥구나무 아래 시원한 그늘에서 잠깐 다리를 풀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 노닐던 옛 추억이 스쳐간다. 그곳에는 마을의 역사와 전설이 주렁주렁 열리고 많은 세상살이의 흔적들이 바람결에 흘러든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언제나 커다란 수박과 고추를 둥그렇게 품고 있는 손부채가 주인의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풀 먹인 모시 적삼에 한껏 멋을 부린 할아버지의 합죽선이 등장하면 위풍당당한 바람은 선비의 풍모를 드높이던 곳이리라.
우리나라의 부채는 전통미술의 한 장르로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멋스럽고, 해학적이기까지 한 도구다. “한국인들은 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닌다”는 외국인의 평처럼 한국인에게 있어 부채는 바로 한국인의 몸이며 그 마음의 일부로 함께 살아왔다. 바람을 일으켜 시원함을 구하며, 불을 피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용품이며, 환자의 약을 달일 때 쾌청(快晴)의 기원을 함께하는 필수품이다. 뜨거운 여름에 햇볕을 가리고, 지나가는 소낙비를 잠시 피할 수 있는 우선(雨扇)이 되기도 하며, 유사시 몸을 보호하는 무기로 변신하는 지혜로운 물건이며, 남녀관계의 감정을 숨기기도 한다.
부채의 형태적 모양으로 원형, 파초잎형, 반달형, 타원형과 부채살을 일부 보이게 하는 소위 부채살 모양과, 용도에 따라 쥘부채, 합죽선, 월선 등 그 다양함에 놀랄만하다. 특별히 한국의 합죽선(合竹扇) 접부채의 활용과 그 위상은 세계 속의 부채의 우수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중화사상의 바람 속에서 살아왔지만, 풀잎처럼 그냥 눕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속에서도 고유하고 창조적인 바람을 일으켜 거꾸로 중국대륙에 역풍을 보내기도 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부채 바람이다. 단선(團扇)밖에 없었던 중국에 접었다 폈다 하는 접부채를 맨 처음 보인 것은 한국인이었다. 송나라에서는 그것을 고려선(高麗扇)이라고 해 진귀하게 여겼으며 여인들 사이에서는 패션의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부채가 무당의 손에 들리게 되면 신명을 부르고 악귀를 내쫓는 굿판의 무구(巫具)가 되고 판소리의 가창자의 손에 잡히면 아름다운 음악의 연출도구가 된다. 광대의 줄타기에서 무희(舞姬)의 춤에 이르기까지 부채는 실로 한국인의 마음과는 떼어 낼 수 없는 신바람의 세계를 연출해왔다. 그러기에 김홍도(弘道)의 풍속화에 접부채가 등장하지 않은 장면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겸재(謙齋) 정선의 금강산도에는 1만2000봉의 기괴한 봉우리가 한 손에 다 들어왔던 것이다. 중국은 물론 서양에서도 없었던 접부채를 개발한 고려 합죽선은 '道具'라는 한자말 그대로 실용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道의 기구(具)로 승화시킨 한국인의 도구 관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부채는 한낱 바람을 일으키는 일상용품에서 그치지 않고 때로는 그 골수(骨數)에 따라 벼슬의 품위를 나타내는 신분 상징물이 되기도 하고, 마음의 정표를 전하는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림부채는 완상용의 기능으로서 뜨거운 여름날의 청량하고 시원한 정신과 해학적 즐거움의 그 가치로서 현대의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그 상용의 단순함을 넘어 지고지순한 휴식의 안식처요, 한 손에 우주의 삼라만상을 품는 도(道)의 구현이라 하겠다. 따라서 바람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요 모든 만물들의 생사를 가름하는 무한의 시간으로 이끌어주는 통로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존재, 그러나 늘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있으면서 더불어 수없이 많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요, 함께 호흡하고 생육하는 동반자다. 지난 8월의 무덥고 힘겨운 우리의 삶과 이글거렸던 남북의 텁텁함이 이제는 통쾌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멀고도 가까운 금강산과 개성까지 날아오르길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