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홍철 대전시장 |
패스트 이코노미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안겨 주었지만 자연환경의 파괴, 지구 온난화, 불균형의 심화, 물질만능주의, 인간 존중의 정신 훼손과 큰 대가와 희생을 야기했고, 우리는 한동안 이를 외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빨리, 많이, 편리함, 최고, 일류 등 패스트 이코노미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던 개념들에 대한 반성과 진정한 삶에 대한 가치관에 변화가 일면서 단순한 삶(Silmple Life), 로하스(LOHAS, 건강하고 지속적인 생활), 친환경과 상생을 전제로 한 지속 가능한 발전 등과 같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방식의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여기서 느림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정신적,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필자가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책이 심리학자로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천재 심리학자 대니얼 캐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행동경제학의 바이블로 평가되는 이 책은 사람의 대화와 판단, 그리고 행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생각에서 느림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실증적 연구와 검증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생각은 직관에 의존하는 빠른 생각과, 이성적인 느린 생각으로 나뉘는데, 빠른 생각의 직관적인 편향으로 인해 우리는 착시를 경험하고, 착각이나 오류에 빠지고, 크고 작은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캐너먼은 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위해서는 빠른 생각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면서, 속도를 줄이고 느린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당부한다. 다시 말해 생각과 행동에서 빠르고 감정적인 면을 개선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을 때 궁극적으로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생각을 느리게 한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생활에 투영될 때 어떤 형태로든 삶의 내용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슬로 라이프 몇 가지를 소개하는데,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가 걷기다. 한국계 일본인으로 슬로 운동의 선구자인 쓰지 신이치가 쓴 『슬로 라이프』에도 산책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다. 미국의 작가 소로우는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고 싶으면 걸으라' 했고, 철학자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왔다'는 말을 남겼으며, 만류인력의 법칙도 산책 중에 발견됐다. 실제로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걷다보면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이 맑지고 몸에 활력이 생긴다. 특히 대전은 대전둘레산길을 비롯해 대청호반길, 계족산 황톳길, 대덕 사이언스길 등 걷는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를 통해 건강하고 여유로운 삶을 가꿀 수 있다.
다음으로 독서다. 독서인구가 줄면서 출판업계가 점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인들은 저마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책을 읽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럴 때 일수록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독서를 통해 삶의 속도를 늦추고, 그 속에서 얻어지는 재미와 지식은 정신과 내면의 뜰을 풍성하게 가꾸어 준다. 그래서 필자는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라고 강조하고 오랫동안 실천하고 있다. 오랜 세월 널리 읽힌 훌륭한 인문고전을 많은 시민들이 접하도록 범시민 운동을 시책으로 추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좋은 마을 만들기와 같이 신뢰와 배려의 사회적 자본, 그리고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활동의 참여다. 일반적인 경제논리는 이익의 창출을 우선시하지만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경제는 속도도 더디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 이웃과 더불어 잘살고자 하는 공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건강한 지속가능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는 만큼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법정 스님은 “우리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데 있다”고 했다. 빠르고 많고 편리한 이 세상에서 생각과 행동의 속도를 좀 늦추고,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천 할 때 우리는 풍성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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