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밭문화마당 토요문화학교 꿈다락에서 짚풀공예 수업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는 양인화 초고장 전수자. |
볏짚을 소재로 한 초고장 보유자가 무형문화재로 인정된 것은 양중규 선생이 처음이었다. 양 선생은 왕성한 활동과 꾸준히 공예품경진대회에서 수상해 그 실력을 인정받아 2007년 대전무형문화재 제16호 초고장으로 지정받았다. 양선생의 곁에는 초고장전수자인 큰 딸 양인화씨가 함께 하며 '부전여전'의 짚풀공예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4일 여름의 막바지에서 양인화 초고장전수자를 만났다.
양인화 전수자는 어렸을 적부터 늘 무언가를 만드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만큼 타고난 재능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짚풀공예가 일반공예처럼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음이 늘 안타까웠다.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배우는 과정도 쉽지 않았기에 '그 명맥이 끊어질까'하는 걱정에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도와 초고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경제적으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사명감으로 꾸준히 활동하여 아버지를 잇는 초고장전수자가 됐다. 무형문화재는 장인이기 때문에 전수자가 없으면 그 명맥이 끊어질 수도 있다.
양인화 전수자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양인화 전수자는 “아버지이자 스승이기에 일일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시는지 몸으로 체득하여 알아들을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아버지이기에 한 편 더 어렵다”며 “혹여 실수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현대의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없지만 짚풀은 우리 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더 귀하고 특별하다. 먼 옛날부터 우리의 주식은 쌀이었고 추수가 끝난 농한기를 이용하여 짚으로 지붕을 엮기도 하고 신발을 삼기도 했으며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기도 하면서 크고 작은 생활소품들을 만들어 사용했다.
짚풀공예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 비해 크게 세련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이 아니라, 견고함이나 편리성을 생각하여 만들었다. 또 사용 후 버린다 하여도 일회용이나 폐기물처럼 환경오염을 시키지도 않는다.
우리 선조들의 보이지 않는 생활의 기술이자 지혜였으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하며 친환경적이다. 이것이 짚풀공예가 갖은 특별함이다.
도심의 빌딩 속에 사는 우리에게 짚풀공예는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었던 우리문화이기 때문에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짚풀공예는 어쩌면 한 땀 한 땀 땀방울 속에 꼬이고 엮이면서 멀게만 느꼈던 우리 선조와 지금의 우리를 새끼를 꼬듯 하나로 묶어주는 건 아닐까? 양인화 전수자의 얼굴에 가득찬 열정을 보며 짚풀공예의 의미를 한번 더 새겨본다.
윤영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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