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만 있으면 땅을 가리지도 않고 자라던 마을 뒷산 소나무는 모질게 목숨 이어간 가난한 그 동리 사람을 쏙 닮았다. 봄이 되어 곡식 떨어진 배고픈 사람에겐 연한 속살까지 내어 준 뒷산 소나무는 궁궐짓는 재목으로 미끈하게 자라지는 못해도 동리 아낙들의 온갖 설움과 소망은 알고 자랐다.
이제 이곳에 와서 거친 소나무를 쓰다듬는 사람들이나 송기를 벗겨먹으며 배를 채우고 살았던 사람들이나 그 간절함은 크게 준 것도 크게 는 것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살이 근심 없이 살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 끝자락 청동검을 빼든 전사처럼 장렬하게 산화해 버릴 기세로 모기가 달려들며 우리를 물어댄다. 우리의 소망이 모기의 소망에 비해 어찌 크다 하겠는가! 모기에 쫓겨, 아니 소망의 크기에 밀려 우리는 소나무 우거진 칠성당이를 벗겨진 신발 추스를 새도 없이 떠났다.
글·사진=김혜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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