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호 대전동구의회 전반기의장 |
도대체 가뜩이나 뜨거운 여름을 더욱 달구기라도 하듯이 삼복더위에 등축제를 놓고 두 지자체간에 줄다리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자체들이 축제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문화유산이요 유무형자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규모 토목사업과 단순비교할 성질은 아니지만,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로 탄생한 거가대교는 당시의 엄청난 찬사와 달리, 비싼 통행료로 비난을 자초하는 동시에, 또한 해당 지자체에서는 수십년간 매년 700억원씩을 보전해줘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우를 범했다. 그러나 축제는 함평의 나비축제에서 보듯이, 그 지방의 고유한 내력을 잘 살리면 거가대교의 100분의1 정도 예산만으로도 지역경제를 충분히 견인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이 있다.
지방마다 차이와 차별이 존재하듯이, 지방의 축제양식은 다를 수밖에 없고, 마땅히 달라야 한다. 그래서 남의 축제를 모방하는 것은 스스로 아류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문화콘텐츠라는 재산권을 도둑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벤치마킹을 가장한 모방은 지식재산권의 절도행위다. 아류가 본류나 원조를 능가하기 위해서는 도둑질에 능해야 하고, 양적 규모로 치닫는 수가 많다. 특정한 문화콘텐츠 양식없이 봄철이면 단골로 등장하는 유사한 꽃축제들도 지자체 간에 서로 모방하면서 규모싸움만 하다가, 적자투성이로 끝장나고 마는 것도, 도둑질까지는 아니더라도 심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큰 예산이 수반되는 토목공사로 인해 재정파탄을 경험하는 지자체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지방의 역사성과 특질을 반영하지 못한 채 모방 일변도로 쉽게 만들어진 축제들이 우후죽순으로 선보였다가 고사하곤 하여 역시 재정낭비의 한 축을 이루기도 한다. 중국의 천하제일등축제가 그냥 나온 이름이 아니다. 이 등축제는 당나라때부터 백성들의 소원과 풍년을 기원하며 유래한 것으로, 10년 이상의 제작보완과정과 3000여명의 설치인원만으로도 가히 등소평이 '천하 제1등'으로 칭송하기에 부끄럼없다는 듯이, 동남아에서 1억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한국의 여러 지자체에도 수출해 외화획득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하카타등축제는 신사나 사찰에서 전래되어온 '천등명'이라는 행사가 생활밀착형 축제로 진화한 것인데, 등 하나하나에 의미와 상징을 구사한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일본인 특유의 축소지향을 반영하듯이 작은 등들이 모자이크처럼 퍼져 큰 테마를 보여주는 이색적인 등축제로 주목받고 있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대한민국의 많은 잔치 중에서 유일하다시피 애국혼이 깊이 서린 축제다. 지금부터 420년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군 김시민이 왜군 2만명과 싸울 때 남강에 등불을 띄운 데서 유래되었다. 유등을 띄워 도강하려는 왜군을 막고, 시민들끼리는 통신수단으로 활용하는 예지가 돋보인다. 그리고 당시 순절한 7만여 진주시민의 애국혼을 기리는 유등풍습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단단한 지역민의 에토스를 근간으로 발전한 축제이므로, 대한민국의 대표축제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축제협회에서도 피너클어워드를 수상하여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한 것이다. 급기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의 천하제일등축제처럼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 축제수출의 교두보를 열었다.
서울시는 한국방문의 해를 빙자해 3년간만 한시적으로 진주남강유등축제를 베낀 청계천등축제를 한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서울시민들의 호응이 좋다는 핑계로 아예 정착시키겠다고 한다. 그것도 진주남강유등축제 콘텐츠의 주요 골격을 모사한 채 말이다.
진주시민의 말처럼, 청계천에 등을 띄운다고 청계천이 남강이 되지 않고, 진주시민의 애국혼이 청계천에 서리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지식재산권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진주남강유등축제 콘텐츠를 서울시민에게 구경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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