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기 편집부국장 |
이번 세법개정안은 중산층의 기준을 놓고 국민과 정부간 생각하는 온도차가 극명함을 보여준 사례다.
그동안 많은 국민들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최소한 IMF 경제위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더불어 갈수록 벌어지는 소득양극화로 인해 스스로 중산층임을 포기하고 서민층으로 추락하면서 심한 좌절에 직면해 있다. 열심히 일하면 서민에서 중산층으로, 다시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것도 정부의 중산층 기준 셈범에 분노한 원인일 수 있다. 나아가 상류층은 더 이상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있는 자들이 부(富)의 세습으로 누리는 특권으로 인식되면서 가진 자들에 대한 사회 역할론 부재를 한탄하는 국민들의 감정 폭발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연간 소득이 3000만원이든, 4000만원이든 세금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있는 자들이 역할에 맞게 세를 부담하지 않는 데 왜 거위깃털 뽑듯 상대적으로 적게 버는 사람들 중심으로 세금을 거두려 하느냐는 항변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산층의 기준은 무엇일까?
정부가 이번 세법개정안을 내놨을 때 사용한 중산층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적용했다. OECD 기준 중산층은 중위소득 50~150%를 적용할 경우 연소득 3450만원~5500만원 가구다. 정부는 그래서 최소선인 3450만원 이상으로 택했지만 이에 공감하는 국민은 많이 못봤다. 현재의 물가를 고려할 때 4인 가족이 빠듯하게 살 수밖에 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자녀들 학원보내고 부모님 용돈에 대출이자 갚아 나가는 많은 필부필녀들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일 수밖에 없다.
각종 국가정책의 기준도 중산층 개념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서민의 목돈마련을 지원하는 재형저축 가입자격은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이고 무주택 서민을 위한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지원기준은 부부합산 7000만원 이하다. 연간소득 3450만원은 중산층이 아니라 서민으로 제껴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상으로 중산층에 대한 재미있는 조사가 있다. 한국의 중산층은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을 소유하고 월급여는 500만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 소유, 예금액 잔고 1억원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니는 계층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 보듯 우리사회의 중산층 기준은 소득, 즉 '쩐(?)의 능력'으로 판단한다. 이는 외국의 중산층 개념과 사뭇 다르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 기준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얼마나 저항하는 지, 그리고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는 지 여부 등으로 가려진다. 프랑스에선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한다. 또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공분에 의연히 참여하고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영국도 옥스퍼드대에서 제시한 중산층 기준이 있다. 페어플레이를 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져야 하며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고 불의와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선진국에선 물질보다는 시민의식, 삶의 질에 무게를 둬 중산층을 구분하고 있다. 이 기준을 대입하면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얼마나 될까? 중산층임을 포기하는 국민이 늘고 있는 것이 이런 이유때문인 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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