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그러나 이번 여름 다시 한 번 우리 국민 모두에게 쓰라린 추억을 일깨워준 숫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악명 높은 '29만원'이라는 숫자다. 그래, 올여름 '그 분'이 다시 신문에 등장하고 TV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다. 수천억에 달하는 벌금을 선고 받았지만 통장에 “29만원 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벌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었다고 마냥 당당하던 '그 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회위원들이 벌금추징에 관한 법까지 바꾸면서 압박을 가하고, 수사당국도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일가친척을 조사하는 모습이 뭔가 이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최근 유행하는 어느 개그 프로그램 대사처럼 “29만원 밖에 없다”는 말로 전 국민을 많이 당황하게 했던 그 배짱 든든한 분도 이번에는 스스로 많이 당황한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올여름 우리를 정말 당황하게 만든 뜻밖의 숫자는 '28만명'이다. 초중고 학교에 다니지 않고 아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학생들의 숫자가 놀랍게도 '28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대안학교, 유학, 직업학교, 소년원 등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수도 무려 13만명이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고도 우리나라 학령기 청소년 713만명의 4%에 달하는 28만명이 아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29만원'이라는 숫자가 전국민을 비웃게 만든 코미디였다면 '28만명'이라는 숫자는 국가 전체를 우울하게 만드는 트레제디, 비극적 숫자다.
그 많은 학생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 아이, 한 학생 모두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보호와 양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체들인데, 무려 '28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처럼 무관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 군인 전체 숫자의 2분의1이 되는 인원이 증발된 셈인데 이것이야말로 미래 국가안보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지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오히려 당당해하던 그 무모한 모습처럼 그까짓 '28만명'쯤이야 사라져도 문제없다는 집단적 무감각과 무례함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유독 폭염이 계속되는 올 여름은 특히 대학관계자들에게 힘든 시간이 되고 있다. 급변하는 교육환경과 대내외적으로 증가하는 변화압력이 전국의 모든 대학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제일 큰 압박은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대입정원이 58만명인데 2017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대입정원보다 적어지기 시작해서 10년 후에는 15만명 정도 적은 43만명이 되리라는 예상이다. 대입정원보다 고교졸업생이 15만명 적다는 말은 입학정원 1,000명 되는 대학교 150개가 신입생을 한 명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연일 쏟아지는 교육관련 통계숫자들을 맞춰보는 지방대학 관계자들은 수년 안에 닥쳐올 입학관련 쓰나미에서 살아날 방도를 구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당장 입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에 고심하고 대학의 생존을 위한 계획에 고민하다가 듣게된 '28만명' 이야기는 너무나 큰 충격이고 미안함이었다. 명색이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젊은 영혼을 위한 교육의 큰 그림은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자기 학교 정원 채우기에 급급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러운 것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우리 교육제도에서 사라져버린 어린 학생들이 무려 '28만명'이나 된다는 비극적 소식을 들으면서도 잃은 양을 찾아 나서려는 마음보다 입학정원을 먼저 신경써야 하는 내 자신이 밉고 우리의 교육현실이 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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