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기자]'대전최초 서원' 선비 닮은듯 단아한 멋

[객원기자]'대전최초 서원' 선비 닮은듯 단아한 멋

유성 원촌동 산자락에 위치…영귀루서 갑천풍경 즐길만 [내가 만난 문화재]2. 숭현서원

  • 승인 2013-08-14 17:31
  • 신문게재 2013-08-16 12면
  • 정명자 객원기자정명자 객원기자
대전시 유성구 원촌동에는 갑천이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에 대전지방 최초로 세워진 숭현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도로 가까이 자리한 숭현서원은 비교적 찾기가 쉽고 도심에서 멀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조선시대 선비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숭현서원이란 갈색 문화재 표지판을 확인하고 서원으로 오르는 길은, 봄에는 매화꽃과 배꽃을, 여름엔 토실토실 살이 오른 배들이 선물처럼 눈을 즐겁게 한다.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배 과수원 너머로 보이는 홍살문이 방문객을 맞이하듯 고개를 내밀고 있어 이곳이 서원임을 확인시켜준다. 홍살문 왼쪽에는 작은 하마비가 숨바꼭질 하듯 숨어 있는데 잘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성현을 배향한 공간이기에 홍살문으로 잡스러운 기운들을 막고,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모두 말에서 내려 이곳부터는 경건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가야 함을 홍살문과 하마비가 말해주고 있다. 눈을 들어 잠시 바라본 서원의 입구에는 잘 다듬은 반송들이 자리하고 그 너머로 한창 꽃을 피운 붉은 배롱나무가 서원의 멋을 더해준다.

서원에 배롱나무를 심는 이유는 배롱나무는 껍질이 아주 얇아 마치 껍질이 없는 것처럼 속이 다 비친다. 학문을 하는 선비들이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나무처럼 마음속에 딴 마음을 품지 않고 겉과 속이 같은 선비로 살 길 바라는 마음에서 배롱나무를 서원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또는 나무의 매끈한 줄기처럼 모든 생각과 행동이 깨끗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라고도 전해진다.

서원의 문루인 영귀루의 오른쪽 문을 통해 서원 마당에 들어서면 작고 아담한 서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으로 들어서기 전 계단 아래서 바라보는 서원의 모습은 선비의 모습을 닮은 듯 소박하고 단아하다.

마당 좌우엔 원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된 동재, 서재가 자리하고 있으며, 서재 앞에는 숭현서원의 내력을 적은 묘정비가 서 있다. 묘정비 뒤쪽 서원의 중앙엔 선비들에게 강학하던 공간인 입교당이 있는데 현재 학교의 교실과 같은 공간인 셈이다.

입교당 마루에 앉아 올라온 길을 바라보면, 지금은 도로와 건물들에 가려 물길이 보이지 않으나 예전 나룻배를 타고 회덕에서 갑천을 건너 서원으로 건너다녔을 원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입교당의 쪽문이 열려 있는 날은 입교당 마루가 바람이 통과하는 바람길이 되어 한여름 더위를 식힐 수 있으며 가만히 눈을 감으면 원생들의 글 읽은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입교당 뒤편으로는 제례의 공간인 사당이 있어 봄, 가을로 제향을 지낸다. 사당 옆으로 서원의 여러 가지 업무와 식사준비를 하던 고직사가 복원되었으나 현재는 창고로 쓰이는 듯 해 아쉬움이 있다.

서원을 돌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선비들이 주변 풍경을 즐기며 시를 읊기도 했다는 영귀루에 올라 옛 선비의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앞 들판으로 푸른 벼들이 넘실대고 맑은 갑천이 평화롭게 흐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짧은 시간 가까운 곳으로의 과거 여행을 통해 선비가 되어봄은 어떨까 싶다.

정명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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