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영]흙 다시 만져보자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필영]흙 다시 만져보자

[시론]이필영 공주대 경제학과 교수

  • 승인 2013-08-14 15:36
  • 신문게재 2013-08-15 21면
  • 이필영 공주대 경제학과 교수이필영 공주대 경제학과 교수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 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 ♪”

광복절 노래 1절 가사다.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께서 지으셨다. 오늘은 68주년 광복절. 어린 시절엔 광복절 노래를 자주 불렀다. '광복'이란 뜻도 모르면서 말이다. 한자 말 '光'이니 어찌 알랴. 우리말 큰사전에서는 광복(光)을 “잃었던 나라와 주권을 도로 찾음”으로 풀이한다.

북한도 이날을 기념한다. '해방기념일'이라 부른다. 같은 민족끼리 '광복'과 '해방'으로 나뉜다. 그뿐이랴. 백두산 흙도 만져보지 못한다. 만주 땅도 밟을 수 없다. 북녘 동포는 한라산 흙냄새조차 못 맡는다. 진정 광복이 아니다.

흙은 만물의 근원이다. 생명의 원천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흙을 기본 원소 첫 번째로 꼽았다. 사람도 흙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장 7절 말씀이다. 법구경 3장에서도 “몸은 오래도록 유지될 수 없어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게 되느니라”라 했다. 우파니샤드 6장 1편에서도 “아들아, 한줌의 흙덩어리를 알면 그 흙으로 만든 모든 것을 알게 된다”라 했다. 코란 5장 6절에서도 “그대들이 예배를 드리려고 할 때는… 깨끗한 흙으로 얼굴과 손을 닦아라”고 했다. 모든 종교가 한결같다. 흙은 인간의 근원이요 신성한 물질이다.

최초 인류 이름은 '아담'이다. 히브리어로 땅 또는 흙을 뜻하는 '아다마'(adama)에서 비롯한 말이다. 라틴어로 '호모'(homo)는 사람을 뜻한다. '살아 있는 흙'을 의미하는 '호무스'(homus)에서 온 말이다. 인간은 흙으로 빚어져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죽음'을 '돌아가셨다'로 표현하지 않던가.

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주 서서히 만들어진다. 겉흙이 손가락 한마디(2.5㎝) 정도 생겨나는데 500년 걸리는 것으로 미국 농무부는 추정한다. 다윈은 지렁이가 흙 생성의 지대한 공로자로 표방한다. 잉글랜드 지렁이들이 100~200년이면 겉흙 2.5㎝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흙은 쉽게 사라진다. 빗물에 쓸려내려 간다. 바람에 날리기도 한다. 침식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도시화로 인해 마구 버려진다. 한 해 지구상에 흙이 무려 240억t이나 사라진다고 한다. 한 사람당 3억t이 넘는 양이다.

흙은 유기물질의 보고다. 유기물질의 분해와 합성이 흙에서 반복한다. 식물을 길러내고 생명의 순환을 조절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썩은 물질을 정화한다. 새 생명을 키우는 영양분을 제공한다.

흙은 건강해야 한다. 기름진 흙이 건강한 식물을 키우고, 건강한 식물이 다시 흙의 건강을 유지시켜 준다. 기름진 흙 500g에는 미생물이 수없이 많이 산다. 지구상에 인구보다 많다고 한다. 기원 전 4세기 그리스의 크세노폰은 농업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똥거름과 두엄이 땅을 기름지게 한다고 말이다. 인공 거름은 흙의 건강을 해친다. 흙의 생명력을 퇴화시켜 인류에 큰 재난을 가져온다. '땅'은 '똥'을 만나야 한다. 땅과 똥은 부부지간이다.

흙은 지구의 살갗이다. 흙 두께는 1m도 채 안 된다. 지구 반지름(6380㎞)의 1600만분의 1 정도다. 사람 살갗은 2㎜도 채 안 된다. 사람 키에 1천분의 1에 조금 못 미친다. 비율로 따지면 지구 살갗은 사람 살갗보다 훨씬 얇다. 더 연약하다.

한반도 허리춤이 철조망으로 옥죈 지 60년. 도시화가 80%나 된다. 흙이 마구 파헤쳐진다. 도시마다 수십 층 아파트가 짓누른다. 아스팔트로 칭칭 휘감는다. 시골 농로마저 시멘트로 목 조인다. 유일하게 숨통 트인 학교 운동장마저 흙이 사라진다. 인조 잔디나 아스콘으로 덧입힌다. 그걸 경제성장으로 착각한다. 흙 만져보기 어렵다.

“흙을 파괴하는 나라는 스스로 멸망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말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그게 진정 '광복'이리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2.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3.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4.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