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진]판소리 '흥보가'에 담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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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판소리 '흥보가'에 담긴 세상

[중도춘추]최혜진 목원대 교양교육원 교수

  • 승인 2013-08-14 14:11
  • 신문게재 2013-08-15 20면
  • 최혜진 목원대 교양교육원 교수최혜진 목원대 교양교육원 교수
▲ 최혜진 목원대 교양교육원 교수
▲ 최혜진 목원대 교양교육원 교수
'제비 몰러 나간다~.' 예전에 박동진 명창이 한 광고에서 불러 유명해진 '흥보가'의 한 대목이다. 이 대목은 놀보가 제비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결국 화를 자초하게 되는 장면으로, 심술을 떠는 놀보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진다. 동생을 쫓아내고 호의호식하던 놀보가 자기보다 더 부자가 된 흥보를 보고 배가 아파 못된 짓을 일삼는 것이다. 그 전에 놀보는 어찌하였던가. 물려주신 부모의 재산을 혼자 독차지하고 흥보를 내쫓은 나쁜 형이 아니었던가. 흥보는 형에게 쫓겨난 후 처자를 거느리고 열심히 살아보고자 했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일 저 일 막노동으로 생활을 꾸려가려 가려고 했지만 그 일감도 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은 남의 매를 대신 맞는 매품팔이까지 나서게 됐지만 그 조차도 옆집 꾀쇠아비에게 새치기를 당하고 만다. 줄줄이 나은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보채고 우는데 흥보네 부부는 대책이 없다. 흥보 부부는 살 길이 막막해 서로를 붙들고 우는 것이 일상이다.

우리에게 흥보는 남같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고 서민의 고단한 삶이 공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 반전은 있다. 흥보가 부러진 제비다리를 고친 은덕을 보게 된 것이다. 박속의 은금보화는 흥보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온갖 시름을 없애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흥보는 과연 계속 착하게 지냈을까. '흥보가'의 진짜 미덕은 그 이후부터에 있다. 흥보는 부자가 된 뒤에 형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형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동네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으며, 거지가 된 놀부를 용서하고 우애 좋게 살았던 것이다. '착하게 살자'의 대명사인 흥보는 그 후에도 쭉 착하게 살았을 것임은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다.

'흥보가'를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노동과 부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착한 흥보의 근면 성실한 노동은 그 댓가를 정당히 받지 못했다. 결국은 우연과 행운에 의해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부자인 놀보 형이 있었지만 동생 흥보는 늘 가난했다. 나누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보가 박속에서 나온 여러 인물들에게 된통 혼이 나자 깨달은 진리는 결국 나누며 살아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만 배부른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 이행기에 부의 분배로 인한 계층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사한다. 놀보는 '악덕 자본가'를 상징하고 흥보는 '가난한 서민'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의 상황이 역전되어 결국 서민이 승리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놀보는 놀보인 채로, 흥보는 흥보인 채로 부를 나누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행복할 수 있을까?

현대에는 착하게 사는 흥보보다 어떻게든 남보다 하나를 더 가지려는 놀보가 점점 많아지는 것만 같다. 그러니 서민들은 더 살기가 어려워져 간다. 편법, 탈법, 탈세를 저지르는 부자들의 모습 역시 놀보를 떠올리게 된다. 서민, 중산층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려는 발상과 태도 역시 놀보 심보에 가깝다. 다행히 이 정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놀란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리게 된다.

예전에 판소리는 청중을 울리고 웃기면서 삶의 정서를 전하는 예술 양식이었다. 흥보이야기를 들으면서 청중들은 자신이 흥보가 된 처지라고 생각하며 공감했다. 그리고 쌀과 돈이 가득 든 박이 열렸을 때 마치 내가 복을 받은 것처럼 즐거운 힐링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적 해결 방식이기에 다시 팍팍한 현실로 돌아오면 늘 고단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늘 꿈은 있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란 꿈말이다. 흥보같은 착한 사람이 부자가 많이 되어서 함께 잘 사는 지혜를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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