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석현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스톱 지원팀장 |
뮌헨공항을 거쳐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자 처음 경험한 것은 바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막스플랑크 슈투트가르트 연구소의 행정실장과의 만남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막스플랑크는 해외에서 오는 연구자들이 막스플랑크에 오게 되면 픽업서비스뿐 아니라 비자발급, 주소지 이전 등 연구자가 생소한 환경에서 불편함을 겪지 않게 다양한 행정서비스를 해주고 있었다. 그런 행정서비스의 모습을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 보게 된 것이다. 막스플랑크협회는 다양한 국적의 연구자로 구성돼 있다. 2012년 말 기준 276명의 연구소장 중 30%, 박사 후 연구원의 약 89%가 외국인이다. 이렇게 많은 외국 연구자들이 막스플랑크에 지원하는 이유 가운데 첫 번째는 외국인에 대한, 외부 인력에 대한 지원서비스를 포함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연구지원환경의 우수성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양한 민족이 얽혀서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력에 대한, 인재에 대한 충분한 배려와 세심한 지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지금도 국제사회의 많은 과학 인재가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는 큰 요인이다. 이러한 인재에 대한 세심한 지원의 바탕이 되는 것은 아마도 막스플랑크의 '하낙 원칙(Harnack principle)'이 아닐까 한다. 이 원칙은 “연구수행에 관련한 모든 권한은 연구자가 가지며, 예산 지원은 하지만 간섭하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연구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막스플랑크협회의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협회(Kaiser Wilhelm Society)의 초대 총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즉 연구테마의 선정, 연구비 사용, 인력 활용, 협력연구 등에 대한 최대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연구자는 국민과 국가와의 신뢰성을 지키고 자율성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과학적 수월성을 담보할 수 있는 내부적으로 엄격한 과학적 평가(동료평가)를 통해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있음을 입증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또 사회를 위해 공헌해야 하는 기초과학의 속성을 잊지 않고 있다. 결국, 국민과 정부, 과학자 간의 무한한 신뢰성이 하낙의 원리에 따라 자유로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의 가장 기본이 되고 있었다. 면담자 중 미국의 정규직 자리를 박차고 막스플랑크의 5년짜리 연구를 하기 위하여 독일에 온 연구자가 있을 정도로 막스플랑크의 연구지원환경은 세계적이며 그 중요성 체감할 수 있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에 머무는 동안 연구지원, 해외 연구자지원, 예산, 홍보 등 약 40명의 직원 및 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1개 팀과 약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문구는 “당신이 원한다면(if you want)”라는 말이었다. 바로 연구 환경뿐 아니라 연구자가 원하는 연구지원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다양한 제도 및 조직구조를 봤다. 비서조직, 기술지원조직 등 연구자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인 장치,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구조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처럼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우수한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제도적 측면을 나열하기에 앞서 그 밑바탕에는 신뢰가 깔려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크게는 국민과 과학자 간 신뢰, 작게는 막스플랑크 구성원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배려. 그들은 과학자, 연구지원인력, 박사과정 학생 등 구성원이 제안하는 어떤 아이디어라도 접수하여 해결책을 모색하고, 가능성이 판단되면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적극 지원하고자 노력하는 연구지원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 환경이 연구자를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시키는 동시에 독일이란 나라에 '기초과학 선진국'이란 수식어를 붙게 한 막스플랑크 협회의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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