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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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교육단상]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승인 2013-08-06 14:12
  • 신문게재 2013-08-07 20면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여름 방학식날, 우리 반 학생들 한 명 한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매일 지각하는 A에게 “A야, 우리 2학기 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오자. 개학날도 꼭!! 약속!!”, 수업 중에 큰 소리로 떠든다고 매일 눈총을 받던 B에게 “B야, 2학기 때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에 귀 좀 기울여 줘. 약속!!”, 복도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기 대장인 C에게 “C야, 그동안 선생님께 꾸중 많이 들어서 속상했지? 우리 2학기 때는 복도에서 사뿐사뿐! 약속!”

신나는 방학 날, 즐거운 방학 보내라는 희망찬 메시지보다는 2학기 때는 더욱 잘 해보자는 식의 훈계(?) 가득한 인사를 건네는 내 자신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나의 모습에 살짝 화가 났다.

새 학급을 맡으면 늘 다짐하는 게 있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다른 것보다도 '사랑'을 주는 선생님이 되자는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 내 성격 때문에 늘 무서운 선생님으로 비춰지는 내 모습이 아쉬워 그런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으로 학생을 지도하기란 나에겐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우리 아들이 책꽂이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지나간 일기장과 편지통을 찾아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일기장과 편지들을 꺼내 읽으며 이런 저런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엄마와 아빠의 연애 편지, 그동안 제자들에게서 받은 편지, 아이들이 유치원 때 쓴 그림일기와 1학년 때 삐뚤삐뚤 틀린 글씨로 써내려간 일기장들을 보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했다.

“엄마랑 아빠는 언제 만났어요?”,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요?”, “엄마는 이 편지 준 제자, 아직도 기억나요?”, “내가 1학년 때 갔던 수영장 또 가요.”, “내가 유치원 때 이렇게 사람을 웃기게 그렸네요.” 등등.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추억보따리들이 펼쳐졌다. 그 날,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가끔은 '추억'이라는 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누가 그랬다. 추억이 아름다운 건, 좋은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2006년 내가 가르쳤던 6학년 제자들과 했던 약속!! 졸업을 하며 너무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반신반의로 했던 그 약속-너희들이 스무 살이 되는 2013년 6월 6일 6시에 만나자-을 나는 한 동안 잊고 있었다. D의 문자를 받기 전까지. 대학입시를 앞둔 아이들이 그 약속을 기억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D는 약속한 날짜를 며칠 앞두고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저희들과 한 약속, 잊지 않으셨죠? 그 날 꼭 봬요.'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봤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어느 새 2006년 6학년 6반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내가 수업 중에 했던 말, 꾸중했던 일, 함께 했던 수학여행과 학예발표회, 체육시간에 즐겨했던 보디가드 피구 이야기 등 각자의 추억 보따리들을 꺼내 놓으며 한참을 떠들어댔다.

그러다 한 아이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흑백으로 된 학급사진 표지에 전체 학급 친구들이 써 준 편지들이 묶여있는 롤링페이퍼(?)였다. 사진 속엔 우리의 7년 전 모습이 담겨 있었고, 한 장 한 장 사연 속에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선생님을 만나면 꼭 보여드리려고 가져왔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잠시 울컥했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멋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올해 만난 우리 반 꼬맹이들에게도 난 추억 속의 그 어떤 의미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를 생각하며 2학기도 최선을 다해 힘차게 파이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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