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병대캠프 사고 이후 '사설(私設)', '미인가 시설'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지만 '해병대'는 그 자체가 '사나이 중의 사나이', '강인함', '극기', '최고의 싸움꾼', '군대중의 군대', '여성 불가침'의 대명사이자 고유 브랜드였다.
값 나가는 브랜드이다 보니 사설이든, 미인가 시설이든 '해병대'라는 이름만 갖다 붙이면 '강인한 체력에 강인한 정신'을 필요로 하는 국가, 사회, 부모의 이익과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곳으로 충분했다.
사실적으로 말해서 해병대 사령부가 이제와서 부랴부랴 상표권(업무표장) 등록에 나서는 것은 사설이든 미인가시설이든 간에 '해병대'라는 브랜드를 사회 곳곳에 널리 퍼뜨리고 해병대 존재감과 가치를 높여 주는 것이 싫지 않았다는 자기고백과 같은 뜻일 것이다.
학부모들은 어떤가.
공주사대부고 해병대캠프 사고로 자식을 가슴에 묻은 학부모가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글에는 '학생들을 극기 훈련으로 몰아넣는 것은 한국 사회 특유의 군사문화에서 비롯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가슴 절절한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또 다른 현실은 어떤가. 상당수 부모들이 손쉽게 병영문화를 빌려 애들을 몰아친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목 뒤에는 부모 기대와 욕망, 기준에 못 미치는 '미달아'는 강제로라도 개조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최근에는 '학교폭력 예방'이나 '학교폭력 가해ㆍ피해학생 해병대 캠프' 등 이른바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병영체험 캠프를 진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병영체험이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해결한다면 모든 학생들을 입대시켜 군사훈련을 시키면 된다.
너무도 손쉽게 내뱉는 '남자는 군대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 속에는 여자는 사람축에도 못 끼며 군대 안갔다 온 '유기체'는 사람도 남자도 아니다.
이러한 극도의 성(性)역할 가르기와 배타성에 덧붙여 '군기'가 빠졌다며 '군기'를 채워넣기 위해 남녀노소 불문, 일터 불문하고 전방체험, 병영체험으로 내몬다. 강제로 쪼그려 뛰기를 시키고 옥상에 집합시켜 구타와 얼차려를 줘서 얻어낸 '군기문화'가 어디에 도움이 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한반도의 안보 특수성으로 배양돼 온 군사문화가 모든 생활속에 일반화 되버린 현실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9년부터 5년동안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서 실시한 병영체험 캠프에 다녀온 초·중·고교 학생 수는 전국적으로 11만1397명에 이르고 가장 많은 인원을 보낸 곳은 충남도교육청 관내 학교들로서 1만2962명이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사설캠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적극 권장했고 언론은 그 홍보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한동안 뜸했던 '군대 문화'가 TV 예능프로그램으로 등장해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이고 밀리터리 마니아의 확산 등 군대 문화를 '취미'로 소비하고 있는 추세도 걱정스럽다. 단순히 '푸른 제복'에 대한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성역이었던 군대가 여러모로 다가가기 편해졌다는 측면은 긍정적이라 해도 학생들이 병영문화 시장의 고객이 됐다는 것은 씁쓸하다. 강원도 한 도시에서는 예비역 장교들이 모인 단체가 교육청이 학생들의 안보체험 교육을 방해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교육지원청이 해당 캠프가 '미인가'라며 운영을 중단하라는 조치에 반발한 것이다.
군사문화가 평화문화가 아니듯이 이성적 사고와 창의력은 고사하고 의문을 품지 말아야 할 복종, 상명하복, 단결, 극기 등의 군대 문화보다 자존감과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화와 타협, 협력을 통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민주사회의 문화가 더 우등한 것임은 틀림없다. 태안 해병대 캠프의 비극을 두고 어느 정치인은 “입시 경쟁에 찌들고 학교폭력에 멍든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군사문화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평화”라고 말했다. 태안 해병대 캠프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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