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호]왕희지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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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호]왕희지의 항아리

[월요아침]김신호 대전교육감

  • 승인 2013-07-21 13:39
  • 신문게재 2013-07-22 20면
  • 김신호김신호
장마가 끝나가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미의 울음소리가 도시의 여름을 뜨겁게 울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특히 올 여름은 국가적인 에너지난으로 인해 대대적인 절전 운동을 벌이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더위와의 전쟁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여름이 제일 바쁘다고 한다. 쉽게 지치고 나태해지기 쉬운 계절이다. 그러기에 선현들은 이 시기를 극복하고 지혜롭게 보내는 사람들만이, 추수의 계절에 남들보다 더 많은 결실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나 보다. 한여름의 강렬한 햇빛이 있어야 곡식의 알곡들이 알차고 튼실하게 되듯이 이 후텁지근한 무더위를 잘 이겨내야 행복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어릴 적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건만 삶 속에서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마리의 백조가 춤을 추듯 우아한 자태로 '신이 내린 천사'라는 찬사를 받는 그녀이지만, 정작 그 우아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발은 나무뿌리를 연상케 할 정도다. 그렇다고 어느 누가 그 발이 흉하다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있겠는가. 진정 그녀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류시화 시인의 '옹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 참 많다. 상처 속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값진 스토리들이 숨어 있다. 치유할 수 없는 고통, 그러나 승화된 고통의 흔적을 시인은 '옹이'라 말하면서 옹이가 갖는 참된 의미를 되새겼다.

중국 진나라의 명필가 왕희지가 그 필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젊은이에게 가르쳐준 비법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젊은이를 뒤뜰로 데리고 가 18개의 큰 항아리를 가리키며, 명필가가 되고 싶다면 그 항아리만큼의 먹물을 소비해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탈무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그 중에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三人行必有我師焉)”라는 공자의 가르침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다. 특히 지식과 정보의 양이 급증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아무리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배움을 게을리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고 만다. 미국의 켈로그재단에서 인류의 지식의 양이 두 배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연구했는데, 농경사회 때는 50년이, 최근에는 5년이 걸렸으며, 2020년 경에는 매 73일마다 지식의 양이 두 배가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현대사회는 평생교육의 시대임이 실감난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분명 늘 배우는 사람이고,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은 늘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평범한 진리이지만,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다시 한번 되새겨볼 만한 글귀다.

매미는 흙 속에서 유충으로 7년간 인내의 삶을 산 후에야 비로소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오른다. 30℃를 훌쩍 넘는 한여름의 도심 속에서 끊임없이 뜨겁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이 오늘은 경건한 외침으로까지 들리는 것은 왜일까. 올 여름은 왕희지의 항아리로 심신의 에너지를 충전해 보자. 항아리의 물이 모두 닳아 없어질 때까지 심신에 지친 마음도 씻어보고 독서삼매에도 빠져보면서 무더위를 이기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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