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지일(知日)이 극일(克日)이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희수]지일(知日)이 극일(克日)이다

[목요세평]김희수 건양대 총장

  • 승인 2013-07-17 14:16
  • 신문게재 2013-07-18 20면
  • 김희수 건양대 총장김희수 건양대 총장
▲ 김희수 건양대 총장
▲ 김희수 건양대 총장
최근 20년여 전 돌아가신 나의 백형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형님이 1939년 충남도 위생과에 제출했던 '한지개업의사면허신청서'(限地開業醫師免許申請書) 사본을 구해 보게 되었다. 백형의 존함은 김승수(昇洙)로 일제강점기 때 독학으로 의사면허를 취득하여 개업하신 분이다. 백형과는 18살이나 차이가 나서 어떠한 경로로 병원 개업을 하셨는지 잘 알지 못하던 차에 이번 자료를 통해 어떻게 시험을 치르셨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면허를 취득하셨는지 70년여 전의 과거로 돌아가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백형께서 교육도시 공주 이인에 개업을 하셨기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인초등학교로 전학 가서 형님댁에서 줄곧 중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의 세브란스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한지의사제도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자격을 갖춘 의사들이 부족하여 전국적으로 의료 공백이 생기게 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정한 시험을 통하여 면 단위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병원 개업 자격을 주는 제도였다. 백형께서는 당시 사립 의학강습소가 있던 평양에 유학하여 공부를 마치고 논산의 천성당의원에서 수련과정을 밟던 중에 독자적인 개업을 위하여 한지의사시험에 응시하셨던 것이다.

대전청사의 국가기록원에서 복사해온 형님의 면허신청서 관련서류는 모두 20여 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당시 신청서를 접수받은 충남도 위생과에서 신청자의 자격과 해당 지역의 여건 등을 조사하여 개업의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조선총독부 경무국 위생과에 허가를 상신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면허신청 사본을 받아보는 순간 나는 20년 전 돌아가신 형님을 다시 만난 듯한 상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지개업의사면허신청서는 △신청서 △자필 이력서 △수련병원장의 수련증명서 △의사시험 합격과목증명서 및 학설시험채점표(學說試驗採點表) △호적등본 △출원지역 상황 △종합판정 등 모두 7개 파트로 되어 있었다.

당시 한지의업시험의 시험과목은 내과·외과·산과·안과·약물학 등 5과목으로 각 과목별로 학설(學說, 이론)과 실지(實地, 실기)시험을 치렀고, 시험문제와 함께 형님이 자필로 작성한 답안지가 맨 뒤에 첨부되어 있었다. 시험 평가위원은 충청남도 위생업무를 담당하는 위생기사(서기) 1명, 도립의원 의관 3명, 도립의원 의원 1명 등 총 5명으로, 모두 실명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름을 보니 도립의원 의관 3명은 모두 일본인 의사였다.

출원지역 상황에는 당시 해당 지역이었던 공주군 목동면과 탄천면의 가구 수와 인구수를 조사하고 의료기관 현황, 주민들의 이용편의도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한지의사가 필요한 지역임을 객관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서류 내용은 물론 그 과정이 한마디로 치밀하고 정교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70년여 전의 행정체계가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오히려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말하는 '디테일'이라는 관점에서 아직도 우리는 일본보다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일본의 경제적 침체와 함께 독도 문제, 아베정권의 몰염치한 과거사 부정 등으로 우리의 대일(對日) 감정이 매우 악화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본어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일본 여행도 꺼리는 등 일본에 대한 열기가 식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중국일본학부에서도 학생들의 일본 유학에 대한 인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 일본어 전공 교수님들이 염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 반감을 가지고 있더라도 일본을 기피하고 멀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나온 역사나 또 미래를 보더라도 일본과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며 '현실'인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일본의 장점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때, 즉 '지일(知日)'만이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백형의 의사면허신청서에서 일본의 체계적인 행정시스템과 기록 보존에 대한 철저한 관리시스템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일본으로부터 또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4. aT, '가루쌀 가공식품' 할인대전 진행
  5.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1. 국립농업박물관, 개관 678일 만에 100만 관람객 돌파
  2. 농림부, 2025년 연구개발 사업 어떤 내용 담겼나
  3. 제27회 농림축산식품 과학기술대상, 10월 28일 열린다
  4. 해외농업·산림자원 반입 활성화 법 본격 시행
  5. 사회복지법인 신영복지재단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저소득어르신에게 쌀 배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