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차준]물려주지 않은 은혜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손차준]물려주지 않은 은혜

[시론]손차준 대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승인 2013-07-17 14:15
  • 신문게재 2013-07-18 21면
  • 손차준 대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손차준 대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손차준 대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손차준 대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요즘 돈에 민감하고 돈에 집착하는 황금만능의 시대다. 그렇다보니 부모와 자식 간에도 소송이 흔한 시대가 되었다. 아버지가 상속세를 아끼려고 미리 자식에게 재산을 증여하였다가 자식이 자신을 홀대한다고 망은행위로 인한 증여취소 소송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식들이 어머니를 상대로 재산을 분배해달라는 소송을 다룬 적도 있다. 어머니 생전에 재산분배청구하는 제도는 없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또 아버지 사후 출가한 딸과 어머니 사이에 재산분할 소송이 벌어진다. 가관인 것은 어머니가 박봉의 아버지를 도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임을 성장과정에서 목격하였을 딸들이 이를 부인하며 다투는 상황에 역겨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 이런 유머도 등장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재산을 안 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졸려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

예전에도 이런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였나 보다. 40년 전에 들은 이야기다. “어느 홀로된 노모가 자식들이 장성하자 영감님이 남겨놓은 재산으로 금밥그릇과 금수저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선언했다. 마지막에 자신을 봉양하는 자식에게 주겠노라!” 그뒤 결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사마천의 사기 '육가열전'에 나온다. 한고조 유방 사후 여후가 정치를 전단하자, 육가는 자신의 전재산을 나누어 다섯 아들에게 200금씩 주고 그것으로 생업을 삼아 살도록 하였다. 자신은 남은 재산으로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와 예능에 능한 시종 10명, 100금의 가치가 나가는 보검을 장만하였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너희와 약조를 하마. 내가 너희 집에서 묵는 동안 너희는 내 사람들과 말에게 술과 음식을 주되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한다. 나는 열흘마다 집을 바꿔가겠다. 내가 뉘 집에서 죽으면 보검과 수레ㆍ말ㆍ시종들은 그 집에 주겠다. 1년이면 다른 손님 댁도 왕래해야 하므로 많아야 두세 번을 넘지 않을 것이니 때마다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고 오래 있어도 나에게 싫증을 내지 말거라.'

물론 그가 여후시대에 탄압을 피하기 위하기 위한 눈속임 수단으로 한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요즘상황에서 육가처럼 한다면 자식들이 싫어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효자라면 자신이 모시겠다며 눈물을 흘리며 말리겠지만.

법률가인 나에게 현대적 변용으로서 “금밥그릇”이나 “보검”역할을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유언장제도라고 말하고 싶다. 오래전 38세의 케네디 2세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을 때 그에게 유언장이 있었다는 보도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도 평소 유언장을 작성해 둘 정도로 서양에서는 유언장제도가 일상화되었다는 말이다. 요즘 주변에 유언장에 대하여 묻는 사람이 늘었다. 그만큼 우리사회도 발전하여 재산도 늘었고 사고방식도 선진화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한편으로 부모의 재산을 탐하는 자식은 결국 부모가 그렇게 키운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깨치고 자신의 노력을 통해 무언가 이루어가는 성취감이야말로 젊은이의 특권이고 보람이다. 따라서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간에 때로는 손쉽게 가르쳐 주고 손쉽게 물려주는 것이 제자 또는 자식의 즐거움을 빼앗고 도리어 시들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정답을 안다 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은혜일 수 있다.

당나라 선승 향엄지한(香嚴智閑)이 스승의 질문에 답을 못하고 오히려 답을 물어보다가 거절당한 뒤 그 궁금증을 품은 채 만행하다가 어느 날 기와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음이 왔다. 그는 감격에 겨워 스승이 계신 쪽을 바라보며 절을 했다. “가르쳐 주시지 않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진정한 깨달음을 맛본 것이다.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 은혜라면, 물려주지 않는 것은 더 큰 은혜일 수 있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식 스스로 독립하여 무엇인가를 이루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크나큰 은혜이다.

하지만, 굳이 자식들을 위하여 소나 말노릇을 하면서 큰 재산을 형성해놓으셨다면 부디 자손들의 평화를 위하여 유언장이라도 장만하시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