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주태 청양 합천초 교사 |
어린 시절 시골학교 좋은 선생님이 꿈이었던 나는 햇살 가득한 교실에서 2학년 다섯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꿈을 이룬 듯하다. 비록 나뭇잎 내 나지는 않지만 순진한 계집아이 네 명과 먹머룻빛과는 거리가 먼 희멀건 얼굴색의 사내아이 한 명이 내가 품어야 할 소중한 생명이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반갑게 내 품에 안기는 이 아이들과의 삶은 날마다 새롭고 즐겁다. 외국출신 어머니, 부모와 떨어져 사는 삶 등 어찌 이 아이들에게도 아픔이 있지 않으랴마는 천진난만하게 '까르르'거리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우리 교실은 날마다 행복하다.
시골에 사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우리 반은 자주 밖으로 나간다. 승용차 한 대에 모두 탄 아이들은 시키지 않은 노래를 부르고 신이난 사내아이는 몸을 흔들기까지 한다. 백월산 계곡에 살고 있는 가재를 잡을 때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쳤고 보라색 용담꽃의 꽁무니를 빨아 단맛도 느꼈다. 벚꽃이 만발했던 벚나무에서 버찌를, 방구쟁이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 먹은 아이들의 까만 혀는 가공식품 착색향료와는 비교할 바 안 된다. 밤나무 대추나무에게도 인사하고 민들레 홀씨를 불어 날리며 동화 '강아지 똥'을 이야기 한다. 자연이 준 선물들을 마음껏 누리며 느낀 아이들의 생각은 서툰 일기에 가끔씩 나타나는데 이는 어느 작가의 글보다 아름답다.
“밤 하늘을 봤다. 별이 참 많이 반짝거렸다. 계속 보니 아름다웠다. 공기도 좋은 산에 살아서 나는 운이 좋다. 참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의 일기 중
나는 우리 아이들의 가슴속에 있는 온전하고 건강한 씨앗이 활짝 펴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바란다. 어떤 씨앗은 장미로 만개하고 어떤 씨앗은 소나무로 우거지며, 또 다른 씨앗은 개나리 혹은 채송화로 피어남이 다를 것이다. 이때 장미가 소나무를 부러워한다든가 채송화가 장미와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모습을 지키며 그 모습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이 세상은 장미 또는 소나무 일색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장미와 소나무 그리고 채송화와 개나리가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쑥쑥 자라는 이 아이들이 지금도 그렇듯이 먼 훗날 곳곳에서 아름답게 어울려 살아갈 날이 기대된다.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넉넉하고 푸근하게 아이들을 품어 둥지도 짓게 하고 쉼터도 되어주고 싶은데 오히려 아이들이 나를 세워준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묻는 아이들의 지팡이가 되어주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거름이 되어 주고자 했는데 아이들이 나의 이정표요 자양분이 되고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결국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논 가운데 그 나무에게도 햇빛과 바람, 새들과 많은 생명들은 서로 아름답게 어울릴 대상이었을 것이다.
내일은 아이들과 느티나무 그늘에 가서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어야겠다. 가장 무성해져 더욱 커져 있을 이 나무 밑에서 모두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도 찍고 주변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아야겠다. 분명히 수박도 가져가자고 할 여자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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