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기]프랑스 혁명과 암행어사 유척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박용기]프랑스 혁명과 암행어사 유척

[사이언스 칼럼]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 승인 2013-07-03 14:26
  • 신문게재 2013-07-04 21면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1789년 7월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기점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평민들의 많은 희생을 통하여 그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선물했다. 그런데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미터법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 인류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많은 나라는 복잡한 도량형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도량형제도는 상거래나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귀족들이 소작으로 살아가는 많은 농민과 서민들로부터 부당하게 소작료나 세금을 거두어들이는데 유리한 도구로 사용됨으로써 불평등의 상징이 돼 있었다.

이때문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평민들은 도량형의 개혁 또한 요구하게 됐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도량형 제도야 말로 그들이 원하는 '평등'한 사회의 초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프랑스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과학자들 역시 과학 발전을 위해서는 통일되고 정확한 측정 단위와 방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은 이러한 그들의 생각을 실현시키기에 적절한 기회를 제공했다.

프랑스 아카데미가 추진한 새로운 도량형의 두 가지 큰 줄기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표준'과 '십진법'이었다. 길이에 대한 표준으로 여러 가지가 제안됐지만, 도량형 개혁 위원회에서는 파리를 지나는 지구 사분 자오선 (북극에서부터 적도까지의 길이)의 1000만 분의 1을 기본 단위로 하기로 결정했다. 길이 단위의 명칭은 '척도'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메트론'에서 따온 '미터'로 하기로 했다. 이들은 새로운 도량형 제도를 만들면서 “모든 시대를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라는 정신을 공유하였으며 이러한 이념은 혁명을 주도한 시민들에게도 호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1875년 5월 20일 프랑스, 미국 등을 포함한 17개국이 국제미터협약을 체결하게 됐고 1884년에는 백금과 이리듐이라는 금속의 합금으로 미터와 킬로그램 원기가 제작된다. 1889년 9월에 열린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국제표준으로 승인을 받아 각 회원국에 원기가 제공됨으로써 미터법이 세계적인 도량형의 표준이 되었다. 그 후 과학자들은 보다 정확하고 보편적인 미터표준을 정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현재는 1 m를 '빛이 진공 중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로 정의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미터원기(번호 10 )가 1894년 조선 고종 31년에 들어왔으며 국제미터협약에는 1959년에 가입했고 미터법을 공식적으로 실시하게 된 것은 1964년이다.

비록 국제 미터협약에 가입하고 미터법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프랑스에 비해 늦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가 혁명을 통하여 혼란했던 도량형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한 것보다 300여 년 전부터 도량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조선 중종 4년 (1509년)부터 암행어사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는데, 암행어사들은 유척(鍮尺)이라는 놋쇠로 만든 기준자를 들고 다녔던 것이다. 암행어사는 파견될 군현의 이름이 적힌 임명장과 같은 봉서(封書)와 암행어사의 직무를 적어놓은 사목(事目), 역마와 역졸을 이용할 수 있는 증명인 마패와 함께 유척을 받았다고 한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로 올바른 도량형이 사용되는 지를 감찰해 지방 수령들이 서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공정한 지를 점검하는데 쓰였다. 또 형벌에 사용하는 도구의 크기가 규정에 맞는지 알아보는 용도로도 쓰였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 바른 도량형이 평등과 보편성 및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평민들의 요구에 의해 발전하게 됐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유척은 주로 관청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중앙정부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4. aT, '가루쌀 가공식품' 할인대전 진행
  5.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1. 국립농업박물관, 개관 678일 만에 100만 관람객 돌파
  2. 농림부, 2025년 연구개발 사업 어떤 내용 담겼나
  3. 제27회 농림축산식품 과학기술대상, 10월 28일 열린다
  4. 해외농업·산림자원 반입 활성화 법 본격 시행
  5. 사회복지법인 신영복지재단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저소득어르신에게 쌀 배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