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초대석]'정정당당' 바른 마음으로 큰 그림 그린다

[중도초대석]'정정당당' 바른 마음으로 큰 그림 그린다

충북 시골소년에서 운명같은 인생사… 철도ㆍ항공ㆍ도로사업 첨병 역할로

  • 승인 2013-07-02 18:39
  • 신문게재 2013-07-03 11면
  • 백운석 기자백운석 기자
●고향에서 하천ㆍ국토관리 새 미래 설계- 윤왕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비뚤어진 마음으로 선을 긋게 되면 큰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나무가 아닌, 숲을 먼저 생각하고 정부 사업의 청사진을 그려온 윤왕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은 지금도 미래라는 비전을 꿈꾼다. 윤왕로 청장은 지난 4월 24일 제34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에 임명돼 지역의 하천 및 국토 관리에 대한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됐다. 36년간의 공직생활 속에서 그를 대변하는 굵직굵직한 분야라고 한다면 철도, 항공, 도로 등 3가지를 빠트릴 수가 없다. 각각 10여년동안 이들 분야를 맡아온 윤 청장은 고향인 충청권으로 금의환향해 인생의 새로운 반환점을 맞게 됐다.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국토관리청장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는 그동안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려본다. 본보는 지난달 27일 신임 윤왕로 대전국토관리청장을 만나 그동안 살아온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윤왕로 대전국토관리청장. 사진=손인중 기자 dlswnd98@
▲ 윤왕로 대전국토관리청장. 사진=손인중 기자 dlswnd98@

-먼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고향이 충청권인데 이렇게 충청지역 국토관리의 주역으로 돌아오신 소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네, 바쁜 나날이었습니다. 지난 4월 24일 취임 이후 2개월여가 지났는데 조직 상황을 파악하느라, 업무 성격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생활 패턴을 되돌아보면 예전과는 그리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없습니다. 다만, 국토사무소와 하천부서가 늘어났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이 필요로 하겠지요.”

윤왕로 대전국토관리청장은 취임 이후 업무파악과 기관 방문 등으로 인한 피로감을 이미 말끔히 씻어냈다. 국토관리청장으로 금의환향한 그로서도 고향을 위해 헌신한다는 설렘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왔다고 한다. 바른 마음을 강조하는 윤 청장의 청초한 이미지는 그의 푸른 빛 상의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독히 청색을 좋아하는 윤 청장의 바른 성품이 느껴지는 듯하다.

-고향이 충청지역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린시절 생활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고향에서 근무를 하는 만큼 옛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출신지역에서 근무를 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갑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향은 충북 괴산군 사리면 소매리입니다. 그 당시에 10리(4㎞)정도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에 걸어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당시 생활권은 증평군었고, 청주와 서울쪽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습니다. 청주까지만 하더라도 70리(28㎞)가량 됐답니다.”

괴산군에 있는 보광초등학교에 입학한 윤 청장은 또래와 달리 6살에 먼저 입학을 하게 됐다. 함께 입학한 동기들과는 2살정도 터울이 있었지만 타고난 심성으로 나이많은 동기(?)와도 잘 어울렸다고 한다. 매일 10리 거리에 있는 학교에 걸어다니면서 체력도 길렀지만 소년이었던 윤 청장이라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등하교였다. 그는 6학년때 중학교 진학을 위해 과외를 했다. 당시 과외는 말 그대로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서 하는 공부였다.

▲ 윤왕로 대전국토관리청장은 인천공항 마스터플랜 사업에 참여하며 활주로 배치 변경 등을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주고 있다. 사진=손인중 기자 dlswnd98@
▲ 윤왕로 대전국토관리청장은 인천공항 마스터플랜 사업에 참여하며 활주로 배치 변경 등을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주고 있다. 사진=손인중 기자 dlswnd98@
윤 청장은 당시 어린나이였음에도 시골에서 먹고 살길은 공부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늦은 시각까지 과외를 한 탓에 밤 늦은 하교길이 무서웠다고 윤 청장은 옛 추억을 회상했다. 학교와 마을 사이에는 고개마루와 성황당 등이 있어서 밤늦게 걸어갈 때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습격한다던지,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아버지가 마중 나올 때까지 뽕밭에 숨어있거나, 까치발을 떼가며 걸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창시절부터 공직에 입문하기까지 운명같은 길을 걸어왔다고 들었는데, 어떠했나요?

“운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처음에 생각했던 진로선택이 자의나 타의로 그르치면서 최종적으로 공직에 몸담을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윤 청장은 밤늦게까지 과외를 하는 등의 집념을 통해 증평중학교에 입학했다. 보광초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은 그 당시 전체 학생의 절반가량인 40여명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업에 열중한 결과, 중학교에는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360명 가운데 21등 정도로 윤 청장의 중학교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다.

중학교는 30리(12㎞) 가량 거리였는데, 10리(4㎞) 정도는 버스가 다니는 길로 걸어나와야 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어서 그는 때로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 하기도 했다.

순탄했던 중학시절이 끝날 무렵, 그에게 찾아온 첫 시련은 고교 진학이었다. 평소 온순한 성격이었던 그는 체력장 시험을 앞두고 친구와의 다툼 끝에 팔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깁스를 한 상태라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20점 만점이었던 체력장 점수는 0점으로 처리됐다. 체력장 점수가 0점을 받은 탓에 시험성적이 만점이 되더라도 180점 밖에 안되는 상황이었다. 서울의 고교에 진학하려했지만 당시 응시한 서울 고교의 평균 입학점수는 180점을 상회했다. 낙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낙방의 설움을 딛고 재도전하기 위해 고시학원에서 2개월 가량 공부를 하던 윤 청장은 돌연 시골로 돌아왔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형 집에 살면서 농사일을 돕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던 중 그는 시골에서라도 고교진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증평공고에 입학하게 됐다.

윤청장의 능력은 고교 시절 때부터 돋보였다. 당시 문교부 실업계 고교 경진대회 측량실기분야에서 전국 3등을 차지해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 같은 그의 집념은 이미 고교 3학년 때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원동력이 됐다. 고등학교 영어교사가 시험 공고내용을 알려줘 준비 끝에 당시 교통부시험에서 당당히 합격했던 것. 그러나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꿈도 저버릴 수 없었던 윤 청장은 대학 2차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에 살던 형에게 원서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주소 표기가 잘못돼 원서는 그에게 배달되지 않았고 대학 시험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운명처럼 1977년 9월 서울지방항공관리국으로 발령을 받으며 공직에 입문하게 됐다. 윤 청장은 지금도 가끔 “당시 대학시험에 응시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공직생활 중 많은 일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였습니까.

“철도분야에서 10년, 항공분야에서 10년, 도로분야에서 10년동안 일을 해오면서 각각 커다란 사업을 추진해왔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뿌듯한데요. 외자를 유치하거나 수조원에 달하는 사업 플랜을 계획하고 전국에 걸친 서비스를 강력하게 추진해나가면서 저만의 추진력과 천리안을 갖게 됐답니다.”

서울지방항공관리국 발령 이후 군복무를 마친 윤 청장은 이후 1982년 2월께 교통부 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도시교통과에서는 정종한 전 국토부장관이 과장으로 있을 때 였다.

윤 청장은 이 때 지하철 업무를 담당했다. 사무관 1명, 주사 1명인 편제 속에서 총사업비가 조단위인 사업을 다뤘다.

외국 전동차량, 전기 신호 통신 설비 등 외자도입도 많이 했는데 하나씩 잘못된 부분은 없는 지 법을 확인해가면서 윤 청장은 무엇이든 만능인 '직장의 신(?)'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 지하철 관련 업무의 경우에는 방대한 규모였는데 행정 업무가 끝나면 정거장 현장에까지 걸어서 확인하느라 화장실도 가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서울 지하철 3,4호선 개통에 맞춰 요금체계를 개편해야 했는데, 승객의 요금을 거리에 맞춰 부담케하는 거리비례제는 복잡하고 전산화도 어려움이 커 윤 청장은 이를 단순화시켰다. 기본요금 역시 주변의 논란을 무릅쓰고 110원에서 140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결과는 긍정적이어서 그의 뚝심이 발휘됐던 순간으로 평가됐다.

이후 인천공항 사업도 그의 손을 탔다. 윤 청장은 당초 연간 여객 1억명의 고객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마스터플랜 사업에서 활주로 배치 계획에 손을 댔던 것이다. 하지만 근무 인원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사업비 현실화가 관건이었지만 윤 청장은 이를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이 사업은 여객, 화물, 정비고, 격납고 등 모든 것을 뒤바꿔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윤 청장은 기존에 계획됐던 4개 활주로에서 1개 활주로를 더 만들도록 구상하면서 인천공항개발의 장기 마스터플랜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도로사업에서도 큰 그림을 그리려는 윤 청장의 천리안이 그대로 접목됐다. 윤 청장의 업적으로 본다면 1년만에 전국의 고속도로에 하이패스를 시행한 것이다.

그의 신조 중 하나가 바로 '일은 자신있으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었던 사업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했다. 무려 시속 170㎞로 차량이 통과하더라도 하이패스가 인식될 수 있도록 설비를 마친 그는 머릿속에는 한마디로 '통큰 생각'이 담겨 있었다.

- 공직생활에서의 성과 이외에 가정생활은 어떠했습니까?

“그 얘기를 하자면 신혼 시절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1988년 31살 쯤 결혼을 했습니다. 키도 작고 당시엔 볼품이 없어보여 연애도 잘 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형수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저만의 뚝심으로 만난 지 2개월만에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윤 청장이 아내에게 반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고 귀걸이를 하지 않는 등 소박함 때문이었다.

윤 청장은 생활하며 매달 저축한 재형저축으로 공무원 임대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현재는 모두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던가. 아내 또한 바른 성품 때문에 윤 청장에게 쓴소리를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평가한다면 몇점정도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70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윤 청장은 앞만 보고 걸어왔던 공직생활 36년동안에 오히려 고생해왔던 아내에게 더욱 모질 게 대했던 것과 많은 관심을 보이지 못했던 자녀들에게는 한결같이 미안할 따름이라며 숙연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10여년 전만하더라도 주량이 한자리에서 소주 1병 가량이었지만 이제는 1~2잔 정도까지 줄었다는 윤 청장의 말 속에는 건강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배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후배공직자들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충청지역의 국토관리를 맡게 된 상황에서 타지역에 비해 커다란 현안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동안 커다란 현안이 마무리됐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역의 위상을 높이고 발전시킬 뿐더러 그 역량에 걸맞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내 교통사고 역시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로 관리에 보다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 청장은 50건의 도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10건이 올해 준공되는 만큼 완벽한 도로건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사회와의 유대관계와 함께 소통이 되고 어려운 점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종적인 목표로는 정부지향사업과 국민행복을 높이는 것이라는 데 윤 청장도 동의했다.

“그동안에는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후배 공직자들에게도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저는 인생관을 '정정당당'이라고 정해놓았습니다. 한자로 바를 정(正)이 3번 있으면 됩니다. 하나는 바르게 생각하는 '정사'이며 또 하나는 바르게 행동하는 '정행', 나머지 하나는 바른 이치에 맞도록 한다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모든 일을 생각한다면 시시비비에 걸리지 않고 미래도 꿈꿀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정정당당하게 살아나갈 생각입니다.”라며 윤왕로 청장은 1시간 30여분간 가진 인터뷰를 끝맺었다.

●윤왕로 청장은 누구?

▲1958년 2월 9일 충북 괴산군 출생.
▲증평공업고, 경희대 토목공학과 졸업.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 신공항개발과장, 건설교통부 도시철도과 과장, 건설교통부 도로관리팀장, 국토해양부 간선철도과장, 국토해양부 기술기준과장, 국토해양부 감사담당관, 행복청 기반시설본부장,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이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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